
[이코노믹데일리] SK텔레콤이 방송통신위원회 통신분쟁조정위원회의 ‘연말까지 위약금 면제 연장’ 직권조정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이미 1조5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을 안게 된 SK텔레콤이 법적 강제성이 없는 조정안까지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SK텔레콤은 피해자들의 집단소송과 개인정보위의 과징금에 대한 행정소송 등 안팎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소송의 늪’에 빠져들게 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은 4일, 분쟁조정위의 직권조정 결정에 대해 회신 마감 기한인 3일까지 별도의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음으로써 자동 ‘불수용’ 입장을 확정했다. SK텔레콤 측은 “회사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과 유사 소송 및 집단 분쟁에 미칠 파급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락이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분쟁조정위는 지난 8월 21일, SK텔레콤이 설정한 위약금 면제 기한(4월 24일~5월 3일)이 법리적 근거 없이 지나치게 짧았다며 올해 말까지 해지하는 모든 이용자에게 위약금을 면제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양 당사자가 모두 수용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권고’적 성격의 조치였다.
SK텔레콤이 이를 거부한 배경에는 막대한 재무적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회사는 이미 △고객 감사 패키지 5000억원 △정보보호 투자 7000억원 △유심 교체 및 대리점 손실 보전 2500억원 등 총 1조4500억원의 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사상 최대 규모인 1348억원의 과징금까지 부과받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만명에 이를 수 있는 잠재적 해지자들의 위약금까지 모두 면제해줄 경우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 소비자 분노, ‘끝장 소송전’으로 번지나
SK텔레콤의 결정에 소비자들과 시민단체의 비판은 거세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SK텔레콤은 전 국민을 상대로 끝장 소송전을 벌이겠다는 심산”이라며 “SK텔레콤의 무거운 책임을 감안할 때 후안무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분쟁조정이 결렬됨에 따라 조정을 신청했던 당사자들은 이제 법원을 통해 직접 권리를 구제받는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향후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에도 수천 명 규모의 집단분쟁조정이 접수돼 있어 이 결과에 따라 소송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SK텔레콤은 개인정보위가 부과한 1348억원의 과징금에 대해서도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SK텔레콤은 소비자들에게는 ‘피고’로 정부에게는 ‘원고’로 법정에 서는 이중의 소송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번 결정으로 SK텔레콤은 ‘재무적 부담 완화’라는 실리를 택한 셈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비용 절감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잇따른 소송전은 기업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이는 결국 고객 이탈과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태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업이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거부할 수 있는 ‘권고’만으로는 실질적인 소비자 피해 구제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SK텔레콤의 이번 결정이 향후 관련 법 개정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