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데일리] SK텔레콤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규제 패러다임을 ‘사후 제재’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면 전환한다. 반복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기업에는 과징금을 가중하는 한편 평소 정보보호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기업에는 과징금을 감경하는 방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 기업의 자발적 보안 체질 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인정보 안전관리 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최장혁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사후 땜질식 규제로는 급변하는 해킹 기술에 대응할 수 없다”며 “기업이 적극적으로 선제적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인센티브 중심 체계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 ‘CEO 책임’ 명시, ‘CPO 권한’ 강화..반복 사고엔 ‘징벌적 과징금’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기업의 상시적 내부통제 강화다. 개인정보 보호의 최종 책임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고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의 실질적 권한을 대폭 강화한다. CPO 지정 신고제를 도입하고 이사회에 정기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현황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해 CPO가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다.
또 대규모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기업(매출 1500억원 이상, 100만명 이상 정보 처리)은 최소 1명 이상의 개인정보보호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전체 정보화 예산의 최소 10%를 개인정보보호 예산으로 확보하도록 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에는 과징금 감경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채찍’도 강화된다. 같은 원인으로 유출 사고를 반복하는 기업에는 과징금을 가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징벌적 과징금’ 도입도 검토한다. 최 부위원장은 “징벌적 과징금 제도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가 있어 연구를 통해 장기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면서도 “현재 과징금 부과 체계에도 다양한 가중·감경 제도가 있어 이를 적극 활용하면 법 개정 전에도 일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구제도 실질화된다.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경우 실제 유출된 사람뿐 아니라 유출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까지 통지 의무를 확대하고 부과된 과징금을 피해자 구제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는 과징금이 국고로 귀속돼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 밖에도 △주요 개인정보처리시스템에 대한 공격표면 관리 강화 및 모의해킹 정례화 △전화번호·상세주소 등 민감 정보의 암호화 대상 확대 △개인정보보호관리체계(ISMS-P) 인증 단계적 의무화 △개인정보 유출 대비 보험상품 개발 유도 등 다각적인 대책이 포함됐다.
고학수 개인정보위원장은 “사업자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투자를 단순히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기지 말고 고객 신뢰 확보를 위한 기본적 책무이자 전략적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