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창간 5주년 특집] 디지털 3.0이 바꿀 車 사는 법, 현대차는 '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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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
2023-06-29 06:00:00

전동화·자율주행 앞서지만 영업은 보수적

해외선 온라인 판매 적극적, 국내선 '아직'

온·오프 편중 않고 영업점 역할 변화 시도

현대자동차는 2021년 9월 최초로 온라인 판매 전용 모델인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를 출시했다. 사진은 출시 당시 열린 행사에서 캐스퍼 실물이 공개된 모습[사진=현대차]


[이코노믹데일리] 자동차 산업에서도 디지털 3.0은 곧 다가올 미래이자 풀어야 할 숙제다. 내연기관에서 전기 모터로, 사람의 운전 실력에서 시스템의 감지·연산 능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동수단을 넘어 생활 공간으로 개념이 확장되는 것 또한 미래 자동차의 특징이다.

디지털 3.0은 자동차라는 장치, 즉 하드웨어만 바꾸지는 않는다. 자동차를 생산, 판매, 관리하는 생애주기 전반을 새롭게 정의한다. 공장은 물론 영업망과 부품 생태계까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갖출 전망이다.

자동차 판매량 세계 3위이자 국내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디지털 3.0 시대를 맞아 '패스트 팔로어(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완성차 브랜드인 현대차·기아·제네시스는 물론 부품과 모듈 부문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도 혁신의 고삐를 죄고 있다.


현대차는 전동화·자율주행을 미국과 유럽·일본의 유서 깊은 자동차 기업을 역전할 기회로 삼고 신차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은 흥행에 성공했고 자율주행 기능 일종인 지능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은 양산 모델에 탑재돼 경쟁 차종보다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동화·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영업은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늦은 모양새다. 제너럴모터스(GM)와 BMW, 테슬라 등 수입차 브랜드는 온라인 판매를 도입·강화하지만 현대차는 노동조합과 영업점 반대로 쉽사리 판매 방식을 전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현대차 "캐스퍼 빼면 글쎄"…온라인 판매에 소극적인 이유

아직까지 가장 많은 신차 구매 계약이 이뤄지는 장소는 오프라인 영업점이다. 소비자가 전시장을 방문하면 영업사원이 달라붙어 차량을 소개하며 구매를 권유한다. 소비자는 운전석에 앉아보기도 하고 제원과 편의장비, 가격 등을 물어본 뒤 지갑을 열지 말지 결정한다. 차량이 출고된 이후에는 대금과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등록을 마친다.

온라인 구매는 소비자가 영업점을 방문하는 절차가 생략된다. 모든 차량을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테슬라는 웹사이트에서 원하는 차량과 옵션을 선택한 뒤 주문 대금(계약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담당 직원이 배정된다. 차량 인도와 서류 처리, 등록 절차 등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소비자와 테슬라 직원은 서로 얼굴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현대차도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를 판매하면서 이러한 방식을 도입했다. 비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것이지만 영업사원에 지급할 판매 수수료(인센티브)를 포함한 부대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차는 제조원가에 판매·영업비용을 빼고 나면 중형이나 대형 차종과 비교해 남는 게 별로 없다.

캐스퍼 온라인 판매는 실험이기도 하다. 현대차 국내 영업망은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대리점과 현대차 정규직 사원이 근무하는 직영점(지점)으로 나뉘는데 온라인 판매를 전면 도입했을 때 대리점 사업자와 지점 직원의 반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판매 방식을 바꾸려면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노사 협의를 거쳐야 한다. 캐스퍼는 현대차가 지분을 투자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생산돼 노조 동의 없이 온라인 판매가 가능했다.

◆시장 상황 따라 온·오프라인 비중 조절하는 '맞춤형 마케팅'

길게 보면 현대차도 오프라인 영업점 중심 판매 방식을 바꿀 공산이 크다. 매장 운영에 따른 비용을 아끼려는 의도도 있지만 소비 문화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또한 경쟁 브랜드가 편의성을 앞세워 온라인 판매 비중을 높이는 동안 기존 방식에 머무를 수만 없다.

현대차는 이미 미국과 인도 등 해외 시장에서는 온라인 차량 구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과거 한 차례 진출했다 고배를 마신 일본에서는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앞세워 100% 온라인 판매 전략으로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디지털 3.0 시대에 들어서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또는 둘을 결합한 확장현실(XR)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이러한 흐름이 빨라질 전망이다. 원하는 차종과 색상을 집에서 가상 화면으로 미리 살펴보고 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 영업점이 존재 이유를 완전히 잃어버릴 가능성은 낮다. 계약에 앞서 차량을 몰아보거나 여러 기능을 체험하려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차가 국내에서 온라인 판매 확대를 조급해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온·오프라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시장 특성을 고려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영업점은 판매뿐 아니라 차량 유지·처분 등 보유 기간 전체에 걸친 종합 서비스 거점으로 개념이 확장될 것"이라며 "영업사원의 역할도 지금보다 더 늘어나고 전문화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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