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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달 특집③] 출산율 위기, 대·중소기업 격차 좁혀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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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
2023-05-16 07:00:00

대기업 6명 결혼할 때 중소기업은 4명뿐

출산·육아휴직 활용 비율 최대 2배 차이

저출산 문제, 노동 정책으로 해법 찾아야

'집단 복지' 도입한 일본·독일 사례 봐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복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산업단지, 지역별로 묶은 집단적 복지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사진은 경북 김천시에 있는 한 산업단지[사진=김천시]


[이코노믹데일리] #1. 대기업 근로자 A씨(34·남)는 최근 육아휴직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다. A씨가 휴직한 기간은 6개월. 다소 부족한 감은 있지만 1년간 휴직한 부인과 교대로 육아를 맡으면서 아이는 두 돌이 가까웠다. A씨는 아이를 아직 어린이집을 보내기에는 이른 감이 있어 육아기 재택근무제 신청을 고민 중이다.

#2. 중소기업 근로자 B씨(32·여)는 직장을 그만뒀다. 1년 전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결혼을 했지만 최근 아이를 가지면서 고민 끝에 사직을 결심했다. 법적으로 90일 동안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부족한 인원 탓에 휴직 기간에만 업무를 대체할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극악의 출산율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다. 임금과 복지 수준 차이가 대표적인데 이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이중구조'를 만들어 낸다. 국내 고용 8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이 각종 출산·육아 관련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사회 전체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저출산 해법,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에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해 한국노동패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간 출산율 차이는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기준으로 중소기업 근로자가 첫째 아이를 낳을 확률은 3.18%에 그친 반면 대기업 근로자는 이 비율이 4.37%로 1.37배 더 높았다.

결혼 확률을 비교해도 중소기업 근로자 100명 가운데 한 해 4.23명이 결혼하는 반면 대기업 근로자는 6.05명이 혼인했다. 한국은 결혼을 통한 출산이 전체 출산의 98%에 이르는데 반대로 말하면 출산율을 높이려면 혼인율을 먼저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혼인 여부를 가르는 주요한 변수는 임금이다. 한국노동연구원(한노연)은 코로나19 대유행 직전 3개년(2017~2019년) 동안 혼인한 상태인 남성 비율을 연령대와 임금 수준별로 계산했다. 그 결과 모든 연령대에서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결혼을 한 비율이 높았다. 남성 초혼 연령(33.7세)이 포함된 31~35세 구간을 보면 소득 하위 10%는 31%에 불과했으나 소득 상위 10%는 76%에 이르렀다.

이질적인 두 집단 간 격차는 육아·출산 관련 복지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노연은 기업 규모별로 주요 사내 복지 도입 비율을 분석했는데 보육 지원 제도는 10~299인 사업장은 한 자릿수를 보인 데 반해 300~999인 사업장은 24.3%, 1000인 이상은 54.7%까지 올라갔다. 법제화가 이뤄진 육아휴직은 도입 비율이 대체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활용 비율을 보면 도입 비율보다 낮아질 뿐 아니라 △30~99인 59.3% △100~299인 77.2% △300~999인 83.0% △1000인 이상 95.2%로 격차가 벌어졌다.

배우자 출산휴가 제도를 얼마나 활용하는지를 따져봤더니 차이는 더 커졌다. 100~299인 사업장은 36.2%에 그쳤지만 300~999인 사업장은 50%에 근접하다가 1000인 이상은 70%를 웃돌았다. 300인 미만 사업장과 1000인 이상 사업장 간 배우자 출산휴가 활용률 격차는 2배가 넘었다.

다양한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커질 대로 커진 차이를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준 높은 복지를 제공할 여력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사내 출산·육아 지원책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업 복지 의존도 높은 韓, 일본·독일 사례 주목해야

한국은 국가가 주체인 복지와 별개로 기업이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복지 의존도가 높다. 복지 지출은 해마다 늘어나지만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저소득 청년, 고령자 등 특정 집단에 한정해 이들의 생활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정책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기업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다수다.

일본과 독일 등 다른 선진국은 공공과 민간 중간 지대에 준공공 또는 사회적 연대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일본은 전국 단위와 지역별로 근로자 복지 센터를 갖추고 중소기업 근로자가 가입하는 공제조합 형태로 운영 중이다. 건강검진이나 퇴직금 공제를 비롯해 가사 대행, 결혼 상담, 결혼·출산 보조금 지급 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준공공적 보험 성격이 강한 탓에 출산이나 육아를 직접 지원하는 제도는 약한 편이고 가입률도 5% 내외로 낮은 편이다.

독일은 정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전국 단위 산별 노동조합이 복지 제공 주체로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표적인 예는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 노사와 볼프스부르크시(市)는 지역 실업률을 줄이고자 머리를 맞대고 '오토비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별도로 회사를 설립하고 부품 업체를 한 데 모은 단지를 조성했다. 이를 통해 직업 훈련과 여가·문화 지원, 인력 중개, 공동 육아 등 일자리에서 생활에 이르는 복지 전반을 제공한다.

일본과 독일 사례를 한국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복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참고할 만한다. 일본은 개별 기업이 대처하기 어려운 다양한 복지 수요를 집단으로 묶어 해결했고 독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문가들은 극도로 낮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1차원적인 예산 지원, 휴직 제도 도입 이외에도 노동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중소기업 간 복지 격차 해소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출산·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고용을 유연화해 대체 인력 공급을 원활히 하고 산업단지나 지역 단위 직장 어린이집이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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