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자수첩] 정유업계와 밀당 실패한 정부, 궁색한 '시간 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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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서 수습기자
2023-03-25 07:30:00

석유제품 도매가 공개 심의, 3번째 연기

'반짝 호황' 이득 봤다 '표적'된 정유업계

물가 안정 명분 설익은 포퓰리즘은 위험

산업부 고은서 수습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정유업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횡재세 도입부터 시작해서 유류 도매가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고유가 책임을 정유업계에 떠넘기겠다는 건가. 

지난 24일로 예정된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 도매가격 공개 관련 재심의'를 또 한번 미뤘다. 지난달 24일 한 차례 심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다 회의가 연기된 이달 10일과 24일을 포함하면 허탕만 3번 친 셈이다.

치솟은 기름값으로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석유제품 가격 공개 범위 확대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 했다. 유통 단계별로 세분화해 도매가를 공개하겠다는 시도였다. 올해 들어 기름값이 빠르게 안정되면서 정부는 닭을 쫓다 지붕을 쳐다본 격이 됐다. 심의가 연기된 이유를 놓고 별다른 설명도 없어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유류 도매가 공개는 2009년 이명박 정부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 따라 무산됐다. 당시 정유사 영업비밀을 침해할 뿐 아니라 주유소 간 가격 담합 가능성 때문에 규개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 정부는 우왕좌왕하며 '아니면 말고'식 각종 규제를 적용하기 전에 전 정부가 왜 실패했는지 분석했어야 했다. 유류 도매가를 공개하면 정유사 간 가격 경쟁이 일어나고 기름값 안정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유류 가격은 개인사업자들이 재량으로 정한다. 정부가 간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미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GS칼텍스 등 정유 4사는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 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매주 전국 평균 휘발유·경유 가격을 공개하고 있다. 전국 주유소 기름값을 누구나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휘발유·경유 소매 가격은 선진국 중에서도 낮은 편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3개국 중 한국 유류 소매가는 최하위권인 20위다.

정부가 '반짝 호황'에 매몰돼 정유업계와 '밀당(밀고 당기기)'을 벌이는 사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정유 4사 중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곳은 지난해 4분기(9~12월) 나란히 영업적자로 돌아섰다. 정제마진 축소,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 손실에 더해 중국 시장 수요 회복도 예상보다 더뎠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1~3월)도 상황은 비슷할 전망이다.

정유사는 지난해 고유가 덕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표적이 됐다. 횡재세든 유류 도매가 공개든 정부의 설익은 판단이 아쉽다. 이는 현 정부가 보인 친기업 행보와도 결이 맞지 않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이겠지만 포퓰리즘에 스스로 눈을 가리는 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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