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82건
-
함영주 판결이 남긴 질문...사법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흐르는가
하나은행 채용 비리 사건으로 기소됐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하나의 법률적 결론에 그치지 않는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확정됐지만 사건의 핵심이었던 업무방해 혐의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결과적으로 함 회장을 수년간 따라다녔던 가장 무거운 사법 리스크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판결문을 덮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과연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는가 하는 물음이다. 사건의 출발은 2015~2016년이다.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의 점수 조작과 성별 차별 의혹이 수사로 이어졌고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 판단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함영주라는 개인은 물론 하나금융이라는 조직 전체는 ‘사법 리스크’라는 불확실성을 안은 채 경영을 이어가야 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법정 안에서는 분명히 작동한다. 그러나 시장과 여론, 조직 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고경영자가 형사 재판의 당사자가 되는 순간, 그 재판의 결론과 무관하게 기업의 전략과 의사결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법 절차가 길어질수록 그 부담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누적된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특히 문제 삼은 대목은 항소심의 판단 방식이다. 1심은 채용 담당자들의 일관된 진술과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함 회장이 합격권 밖 지원자를 합격시키도록 위력을 행사하거나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새로운 증거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판단을 뒤집어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합리적인 사정 변경 없이 1심의 판단을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한 사건의 결론을 바로잡는 차원을 넘어 형사재판에서 증거 판단과 심증 형성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다시 확인한 판결이다.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1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으려면 그 판단이 논리와 경험칙에 명백히 반하거나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급심은 판단의 수정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추정자가 될 위험에 놓인다. 이 과정이 길어질수록 사건은 법정 밖에서도 계속 살아 움직이고 사회 전체의 피로도는 누적된다. 물론 이번 판결이 모든 혐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은 2심의 유죄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는 당시 금융권 전반에 퍼져 있던 성별 채용 관행에 대해 사법부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돼 왔던 차별 구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이 지점에서도 질문은 남는다. 구조적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특정 개인의 형사 책임을 어디까지 묻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심은 관행적 구조 속에서 개인의 직접적 개입과 책임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고, 대법원 역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증명 부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수년간 형사 재판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는가. 사법의 시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고대 로마의 법언인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은 피해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피고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무죄든 유죄든, 결론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기업 경영에서 불확실성은 가장 비싼 비용이다. 투자와 인사, 중장기 전략은 모두 ‘혹시 모를 사법 리스크’를 전제로 조정되고 그 부담은 결국 시장과 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 해외 사례는 다른 선택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연방 검찰은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연루된 형사 사건에서 기소 단계부터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유죄 입증 가능성이 충분히 높지 않다면 형사 기소 대신 민사 제재나 행정 처분으로 방향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무리한 기소가 사법 신뢰와 시장 안정성을 동시에 훼손할 수 있다는 경험적 학습의 결과다. 일본 역시 최근 기업 범죄에서 개인의 형사 책임을 묻는 기준을 한층 엄격히 하고 있다. 명확한 지시와 공모, 이익 귀속이 입증되지 않으면 조직 책임과 개인 책임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비춰보면 우리 사법 시스템은 여전히 “일단 법정으로 가져가자”는 관성이 강해 보인다.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었던 사안이, 재판이라는 긴 터널로 진입하면서 사회적 비용을 키운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판단뿐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의 판단 역시 함께 성찰돼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정명’을 들었다. 이름과 역할이 바로 서야 질서가 회복된다는 뜻이다. 사법 시스템도 다르지 않다. 수사는 수사답게, 기소는 기소답게, 재판은 재판답게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한 단계가 자기 역할을 넘어서면 그 부담은 개인과 사회 전체로 전가된다. 함영주 회장은 이번 판결로 사법적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모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사회적 에너지는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하나의 결론으로만 남기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어디에서 판단이 지연됐는지,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다음 사법 리스크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사법의 권위는 엄정함에서 나오지만 신뢰는 속도와 일관성에서 완성된다. 이번 판결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유·무죄의 경계선이 아니라, 사법의 시간이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2026-01-30 10:34:50
-
-
-
-
-
중국 경제, 위기는 아니지만 우리를 살려주지도 않는다
중국 경제를 둘러싼 진단은 늘 극단을 오간다. 어떤 이는 “중국 붕괴론”을 말하고 다른 이는 “여전히 5% 성장하는 거대 시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본질을 비켜간다. 지금의 중국은 무너질 단계에 있지 않다. 동시에 한국 경제를 다시 끌어올려 줄 회복의 원천도 아니다. 이 두 사실을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또 한 번 잘못된 기대 위에 정책과 전략을 쌓게 된다. 중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0%를 기록하며 정부 목표를 맞췄다. 미·중 관세 갈등, 내수 침체, 부동산 위기라는 삼중 압박 속에서도 숫자는 지켜냈다. 이는 중국 국가 시스템의 동원력과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제조국이며 수출과 산업 생산 역시 단기적으로는 견조하다. 이 점에서 중국을 곧바로 ‘붕괴 국면’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장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숫자 뒤의 구조’다. 분기별 성장률 흐름은 연중 하향 곡선을 그렸고 연말에 집중된 부양책에도 뚜렷한 반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고정자산 투자는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부동산과 인프라라는 중국 성장의 두 축이 동시에 꺾였다는 의미다. 이는 일시적인 경기 순환이라기보다 성장 모델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중국은 더 이상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2010년대 중국은 한국 경제에 있어 거대한 흡수기였다. 철강, 화학, 정유, 기계, 부품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빨아들이면 한국은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내수가 약하고 투자는 위축됐으며 남는 생산능력을 수출로 풀어내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구조에서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의 고객이 아니라 같은 시장에서 부딪히는 경쟁자가 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중국의 전략 산업이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첨단 장비 분야에서 중국은 ‘저가·대량·국가 지원’이라는 전통적 무기를 다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이 영역들이 한국 기업이 지난 10여 년간 경쟁력을 축적해온 분야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둔화될수록 중국 기업의 해외 공세는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 산업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중국이 살아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쉽게 꺼낸다. 이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만든 착시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스스로도 성장률을 낮추는 방향을 선택했다. 속도보다 안정, 민간보다 국가, 성장보다 안보와 기술 자립을 앞세운다. 이런 중국이 한국 경제의 반등을 외부에서 떠받쳐 줄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과 중국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중국은 관리되는 저성장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위기는 아니지만 주변국에 기회가 되는 국면도 아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고 산업 구조가 중국과 유사한 한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태도의 전환이다. 중국 경제를 ‘회복을 기다릴 대상’이 아니라 ‘고정된 변수’로 놓고 사고해야 한다. 중국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전략이 아니라 중국과 무관하게 작동할 수 있는 성장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수출 시장 다변화, 기술 격차 유지, 내수 기반 확충이라는 오래된 과제가 다시 절박해진 이유다.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나오면 한국 수출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정책 판단을 흐리는 요인이 된다. 냉정하게 말해 중국이 5% 성장하든 4% 성장하든 한국에 돌아오는 과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교훈은 남는다. 일본이 중국 성장에 기대다 구조 전환의 시기를 놓치며 장기 정체로 들어갔던 경험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 경제의 위험을 과장할 필요도 없고 회복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다. 중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구해주지도 않는다. 이 단순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는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문제는 기대가 아니라 전략이다.
2026-01-20 08:01:00
-
전자발찌에 맡긴 안전, 재범은 예고돼 있었다
[이코노믹데일리] 아동 성추행과 살인으로 징역 15년을 복역한 전과자가 출소 이후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다. 법원은 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부착과 신상정보 공개,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좋고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판결문만 보면 엄정해 보이지만, 결론은 또다시 한 자릿수 실형이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법부의 양형 판단과 국가의 관리 방식이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 결과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 예방에만 있지 않다. 범죄의 무게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응보 역시 형벌의 핵심이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살인은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가장 무거운 범주에 속한다. 사회가 형벌에 기대하는 것은 교정의 가능성 이전에, 그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예방의 관점에서도, 응보의 관점에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재판부는 재범 위험을 분명히 인정했고,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형량은 다시 7년대에 머물렀다. 살인을 수반한 아동 성범죄 전력이 있는 피고인에게 반복적으로 내려지는 이 수준의 형벌이 과연 죄값에 부합하는지, 사법부 스스로 답해야 할 대목이다. 응보가 흔들리면 예방도 작동하기 어렵다. 형벌이 범죄의 무게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법은 규범으로서의 권위를 잃는다. 중대한 성범죄 전과자가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는데도 비교적 단기간의 실형에 그친다면, 법이 그 범죄를 얼마나 중대하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재범 억제라는 형벌의 예방 기능도 설 자리를 잃는다. 국가의 책임도 분명하다. 사법부가 형량 판단에 머무는 동안 행정은 전자발찌라는 단일 수단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전자발찌는 범죄를 차단하는 장치가 아니다.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사후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관리 수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해 사실상 전자발찌 부착이 관리의 핵심인 것처럼 작동해 왔다. 이번 사건에서 전자발찌는 억제 수단이 아니었다. 피고인은 이를 착용한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했고, 범행을 반복했다. 이는 전자감독만으로 충분하다는 국가의 판단이 현실과 괴리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자발찌에 안전을 맡겨온 국가의 인식 문제다. 해외에서는 접근이 다르다. 일부 국가는 성범죄를 단순 범죄가 아니라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정신적 이상 상태로 보고, 형기 종료 이후에도 재범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장기 격리나 강제 치료를 병행한다. 인권 논란이 뒤따르지만, 재범 위험을 인정하고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모순만큼은 피하려 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책임이 분산돼 있다. 법원은 형량의 한계를 이유로 사회 방어를 행정에 넘기고, 국가는 사법 판단을 이유로 전자감독에 머문다. 그 사이 형벌의 응보적 기능도, 예방적 기능도 모두 반쪽에 그친다. 그 공백은 반복되는 피해로 채워진다. 성범죄 재범은 우연이 아니다. 재범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죄책에 상응하는 형벌과 실질적 격리를 선택하지 않은 사법부의 판단, 전자발찌에 기대 최소한의 관리에 머문 국가의 대응이 겹쳐진 결과다. 사회 복귀를 전제로 한 판단이 반복되는 한, 같은 유형의 사건은 계속해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026-01-19 16:49:23
-
죄는 개인이 짓지만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국가가 무너질 때는 전차가 아니라 말과 명령이 먼저 무너진다. 헌정 질서를 지탱하는 것은 군홧발이 아니라 절차이고,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이며, 정권의 승리가 아니라 법치의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을 가장 높은 자리에서 먼저 훼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죄는 형법 조문을 넘어 역사에 남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고 ‘역사의 죄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감정의 욕설이 아니라 국민 공동체가 공유해온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의 언어로 내리는 엄정한 정치적·도덕적 평가다. 윤 전 대통령은 공수처 체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판단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나 우발적 저항이 아니었다. 공권력의 집행을 힘으로 가로막고, 국가 시스템을 사유화하려 한 행위가 법치에 남긴 구조적 상처였다. 이 한 건만으로도 결론은 충분하다.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법의 집행’을 정면에서 거부하거나 지연시키고, 제도를 자신의 방패로 삼는 순간 법치국가의 근간은 흔들린다. 그것은 한 개인의 범죄를 넘어 공동체가 합의해온 규범과 신뢰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죄의 무게가 다르다. 더 큰 문제는 이 첫 선고가 ‘예고편’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내달 19일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해당 사건은 이미 결심을 마쳤고 특검은 사형을 구형한 것으로 보도됐다. 사법 절차의 결과와 무관하게 이 사안이 헌정 질서에 던진 충격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판결문이 나오기 전까지 법률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역사적 책임의 영역은 다르다. 민주주의에서 지도자는 ‘법정 유죄’ 이전에도 ‘공적 신뢰’에 의해 심판받는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헌정의 뿌리를 흔들었다는 의혹만으로도 지도자는 이미 공동체 앞에 씻기 어려운 책임을 진다. 윤 전 대통령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 착오나 국정 운영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이 통제 장치를 무력화하고 절차를 무시하는 순간 국가는 ‘법의 국가’가 아니라 ‘사람의 국가’로 전락한다. 법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를 묶어두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권력자가 법을 비틀고 제도를 우회하며 국가 장치를 사병처럼 다루려 했다면, 그때부터 역사적 죄는 시작된다. 지도자의 일탈은 개인의 타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를 왜곡하고 수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으며 결국 국민 사이에 공유된 규칙 자체를 붕괴시킨다. “어차피 힘 있는 사람은 빠져나간다”는 냉소가 확산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이 사태가 남긴 상처는 개인의 명예나 정치적 진영의 승패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상식의 국가’라는 토대 자체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한 산업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권력이 절차를 경시하고 물리력과 지시로 제도를 눌러버리는 순간 우리는 가장 낡은 개발도상국적 권력 습성의 어둠으로 되돌아간다. 그 후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합리화하는 순간 더 큰 재앙은 예외 없이 반복된다. 역사는 늘 그렇게 경고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첫째, 재판은 재판대로 끝까지 원칙주의를 지켜야 한다. 여론의 속도나 정치적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법률과 증거, 절차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헌정의 복원이다. 둘째,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사태를 진영 논리로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편이면 괜찮고 상대편이면 악”이라는 언어는 민주주의를 다시 찢는다. 법치를 지키는 일은 어느 편의 승리가 아니라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윤석열을 ‘역사의 죄인’이라 부르는 것은 특정 인물을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권력이 헌정 위에 서지 못하도록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해서다. 우리는 법을, 절차를, 상식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자 내일의 안전장치다. 죄는 개인이 짓지만, 그 대가는 언제나 국민이 치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묻고 반드시 기록하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정의 판결이 어떤 결론에 이르든 역사 앞에서의 책임은 이미 시작됐다.
2026-01-18 15:58:40
-
베트남 축구 두 번째 도약, 다음은 무엇인가
베트남 축구의 시간은 두 번 흐른다. 하나는 과거의 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시간이다. 그 두 시간을 가르는 이름이 있다. 하나는 박항서, 다른 하나는 김상식이다. 전자가 베트남 축구의 문을 열었다면 후자는 그 문을 지나 새로운 방으로 들어서고 있다. ◆ 박항서 매직,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다 박항서 감독 이전의 베트남 축구는 늘 ‘열심히 하지만 한계가 분명한 팀’으로 분류됐다. 체력과 투지는 있었지만 전술적 완성도와 국제대회 경험,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는 힘이 부족했다. 박항서 매직의 본질은 전술 그 자체보다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그는 베트남 선수들에게 “너희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2018년 U-23 아시안컵 준우승, 스즈키컵 우승,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로 이어진 성과는 단순한 성적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베트남 축구의 세계관을 바꾼 사건이었다. 베트남은 더 이상 ‘도전하는 팀’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팀’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다만 박항서 체제의 한계도 분명했다. 상대가 베트남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수비 조직력과 역습 중심의 전술은 점차 예측 가능해졌다. 박항서 매직은 베트남 축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지만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해졌다. ◆ 김상식 매직, ‘체질’을 바꾸다 김상식 감독이 부임했을 때 기대와 우려는 동시에 존재했다. “박항서의 그림자를 넘어설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김상식 매직은 출발부터 방향이 달랐다. 그는 베트남 축구를 ‘잘 싸우는 팀’에서 ‘잘 만드는 팀’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김상식 축구의 핵심은 전술의 자립이다. 선수 개인의 투혼에 의존하기보다 공간 점유와 빌드업, 전방 압박의 타이밍을 체계화했다. 최근 U-23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들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UAE를 상대로 한 연장 혈투에서 베트남은 더 이상 수세적인 팀이 아니었다. 주도권을 잡고 흔들리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힘을 갖춘 모습이었다. 김상식 매직의 또 다른 특징은 세대 확장이다. 그는 성인 대표팀과 U-23을 단절된 조직으로 보지 않는다. 전술 철학을 공유하고, 어린 선수들에게 ‘대표팀 축구’를 미리 체득하게 한다. 이는 박항서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구조적 연계 문제를 보완하는 지점이다. ◆ 두 매직의 결정적 차이 박항서 매직이 ‘정신의 혁명’이었다면 김상식 매직은 ‘시스템의 혁명’에 가깝다.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의 가능성을 증명했고 김상식은 그 가능성을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박항서의 베트남이 “지면 안 된다”는 팀이었다면 김상식의 베트남은 “이길 수 있다”는 팀이다. 전자가 투쟁의 언어였다면 후자는 설계의 언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스타일 문제가 아니다. 베트남 축구가 이제 아시아 중상위권을 넘어 상위권을 노릴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변화다. 김상식 매직의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단기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 가능성이다. 현재의 전술과 선수 육성 구조가 3년, 5년 뒤에도 작동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만 전망은 밝다. 베트남은 이미 축구를 국가 전략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으며 팬층과 인프라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김상식 체제가 안정적으로 안착한다면 베트남은 동남아의 강자를 넘어 U-23 대회, 아시안컵, 월드컵 예선에서 ‘늘 이름이 불리는 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박항서가 열어준 문을 김상식이 지나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과정이다. 축구는 감독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진짜 성공한 감독은 자신이 떠난 뒤에도 팀이 계속 강해지는 구조를 남긴다. 박항서가 씨앗을 뿌렸고 김상식이 그 씨앗을 숲으로 키우고 있다. 김상식 매직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리고 베트남 축구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앞으로 흐르고 있다.
2026-01-18 15:57:12
-
-
시도그룹 권혁 회장과 '환영받는 부'의 기준
[이코노믹데일리] 해운업은 물류 산업이자 국가의 기억을 실어 나르는 산업이다. 배는 화물을 싣고 항로를 오가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것은 단순한 수익만이 아니다. 전쟁과 재난, 이주와 교역의 장면들이 바다 위에 겹겹이 쌓이며 사회의 기억으로 남는다. 해운 자본이 다른 산업과 구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외에서 해운 자산가가 문화적 평가의 대상이 된 사례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20세기 해운업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아리스토텔 오나시스 역시 사업 성과만으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선박과 항로를 넘어 항공, 문화, 공공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며 사회적 존재감을 형성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찬사와 비판이 교차했지만, 해운 자본이 문화와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인식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최근 국제 해운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찰된다. 선박 보유 규모나 운임 실적보다, 자본이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가 다시 거론되는 사례들이다. 해양 사고와 재난이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 일부 해운 자본은 구호와 안전, 기록과 교육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이는 일회성 기부와는 다른 접근이다. 대표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는 해양문화재단 설립이다. 독립적인 이사회를 두고 항해사와 선원의 삶을 기록하며, 해양을 주제로 한 문학·영화·전시를 지원하는 형태다. 바다를 ‘부의 상징’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문화 자산으로 남기려는 시도다. 이러한 활동은 당장의 성과보다 시간이 지나며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재를 향한 접근도 눈에 띈다. 취약계층 청년을 대상으로 한 해양 직무 체험 프로그램, 항만과 선박 현장을 잇는 교육 과정, 이후 취업으로 이어지는 연계 구조가 그것이다. 해운업이 일부 종사자만의 폐쇄적 영역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 시도다. 단기 지원이 아니라 산업 진입의 통로를 만드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인도주의적 역할을 전면에 둔 사례도 있다. 분쟁 지역이나 재난 발생 시 구호 물자를 전용 항차로 운송하고, 연간 목표 물량과 운용 내역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항로는 수익과 직접 연결되지 않지만, 해운업이 위기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았다. 이러한 선택들은 ‘선행’이라는 말로 쉽게 묶이지 않는다. 자본이 문화와 윤리, 공공성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다. 돈의 크기보다 쓰임의 방향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순간이다. 권혁 회장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 지점에서 새로운 맥락을 갖는다. 해운업을 통해 축적된 자산이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선이다. 사법 판단과는 별개로, 해운 자본이 공공의 기억과 신뢰로 남는 경로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른다. 배는 화물을 싣고 항로를 오간다. 그러나 해운 자본이 남기는 것은 결국 시간 속에서 쌓이는 신뢰다. 해운업이 산업을 넘어 문화로 읽히는 순간, 자산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2026-01-14 09:23:26
-
나라(奈良)가 던지는 1300년의 질문
외교에서 장소는 배경이 아니다. 장소는 메시지다. 때로는 합의문보다 정직하고 정상(頂上)의 발언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13일 한·일 정상회담이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현(奈良県)에서 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의전상의 편의나 지방 활성화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한·일 관계를 어떤 시간대, 어떤 지층(地層)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의사 표현이다. 나라현은 일본의 한 지방 도시가 아니다. 일본이 '국가'라는 틀을 처음 갖춘 원점이며 동아시아가 충돌하기 이전 문명과 제도를 공유하던 기억이 응축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번 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동아시아 질서의 복원이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나라현은 8세기 일본의 수도 헤이조쿄(平城京)가 있던 곳이다. 일본이 율령을 반포하고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다진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출발'은 일본 내부의 자생적 결과물이라기보다 외부 문명을 필사적으로 수용한 선택의 결과였다. 헤이조쿄는 당나라 장안성을 그대로 본뜬 계획도시였다. 도시의 구획부터 관료제, 법률, 의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대륙의 선진 문명을 이식해 자신들을 '문명국'의 반열에 올리고자 했다. 즉, 나라현은 일본이 처음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문법을 학습하고 제도화한 공간이다. 오늘 두 정상이 이곳에 선다는 것은 근현대의 불행한 충돌 이전으로 시선을 돌려보자는 신호다. 100년의 갈등이 아니라 1000년의 교류를 보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시선에서 나라는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이곳을 자신들의 역사가 시작된 성소(聖所)라 말하지만 그 바닥을 파보면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과 기술, 사상의 흔적이 지층처럼 깔려 있다. 나라 일대에는 지금도 '고려', '백제'라는 지명이 선명하다. 일본의 정사(正史)조차 백제·신라·고구려계 도래인들이 국가 건설의 핵심 엔지니어이자 브레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불교와 건축, 토목과 의학, 금속 기술까지 고대 일본을 지탱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한반도를 혈관으로 삼아 유입됐다. 이것은 묵은 국수주의적 감정이 아니다. 차가운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 고대 국가의 성립은 한반도와의 교류 없이는 설명 불가능하다. 나라는 일본만의 시작점이 아니라 한반도가 일본이라는 국가의 설계에 깊숙이 개입했던 '공동의 기억'이 서린 장소다. 왜 하필 지금 나라였는가. 도쿄는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근현대 정치의 악취가 밴 공간이다. 히로시마는 전쟁의 가해와 피해가 뒤엉킨 복잡한 도시다. 반면 나라는 근대 이전 총칼이 오가기 이전의 기억이 보존된 곳이다. 이곳에서의 만남은 과거사를 덮자는 뜻이 아니다. 과거를 다루는 순서를 바꾸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식민과 침략의 시간보다 교류와 공존의 시간을 먼저 소환하고 대립의 기억보다 공동 번영의 기억을 앞에 두겠다는 의지다. 군사 기지도, 현대 정치의 소음도 없는 이곳에서 침묵과 배치가 웅변하는 메시지는 '공존'이다. 이번 회담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 나라현에서의 정상 외교는 한국을 늘 설명하고 사과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위치에만 가두지 않는다. 문명을 전파하고 국가를 함께 설계했던 '역사적 주체'의 자리로 우리를 다시 불러낸다. 이는 외교적 자존감의 회복이다. 동시에 일본에는 무거운 부담이다. 자신들이 외부 문명을 수용해 성장했다는 사실, 그 성장의 젖줄이 한반도였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는 종종 합의문보다 그들이 서 있는 땅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라현이 건네는 메시지는 명징하다. 갈등의 역사만으로 두 나라를 규정할 수 없으며 우리는 한때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동아시아라는 세계를 함께 조형(造形)했던 파트너였다는 사실이다. 그 질서를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어디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고 대화를 시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나라는 바로 그 '시작의 기억' 위에 서 있다. 오늘 열리는 정상회담은 구체적인 성과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갈등의 시대에도 동아시아는 한때 함께 설계된 질서였다는 사실, 그 엄연한 역사의 무게를 양국 정상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번 만남의 의미는 충분하다.
2026-01-13 10:41:24
-
한·일 정상회담에서 자율 외교 가능하다는 신뢰를 남겨야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표면적으로는 한·일 양자 외교의 복원과 관리라는 익숙한 의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복합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한국은 일본과 협력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흔들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동북아의 불안정한 균형 속에서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회담은 한국 외교가 어느 한 편을 선택했는지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일본과의 협력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자동 연결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 자체보다 한·일·중 관계의 설계도에 가깝다. 외교의 출발은 관계 규정이다.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은 오늘날 외교에서도 유효하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 동시에 경쟁적 적대국도 아니다. 역사와 감정의 부담을 안고 있지만 경제·안보·기술 협력이 불가피한 이웃이다. 이 현실을 과장도 축소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회담에서 관계를 ‘가치 동맹’이나 ‘전략적 일체’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관리 가능한 갈등 위에 실용적 협력을 쌓는 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국내 여론에도 중국에도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중국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과도하게 이념화하거나 진영화하지 않는 것은 안정적 신호다. 동북아의 문제는 어느 한 나라의 선택으로 단순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 문제가 언급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을 어떻게 언급하느냐보다 언급하지 않는 방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외교에서는 말보다 맥락이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국을 특정해 ‘위협’이나 ‘리스크’로 규정하는 언어는 불필요하다. 대신 공급망 안정, 예측 가능성, 개방성과 같은 보편적 원칙을 중심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일본과의 협력을 설명하는 데 충분한 언어이며 동시에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은 전쟁을 말하지만 외교에도 적용되는 지혜가 있다. 상대를 직접 겨냥하기보다 구조를 바꾸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중국을 향한 메시지는 일본과의 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협력의 성격과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어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결국 경제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기후 대응 등은 안보와 직결되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협력 분야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영역에서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안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경제 협력의 틀 안에 녹여내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도 실질적 이익을 주고 중국에도 불필요한 경계심을 키우지 않는다. 중국 역시 공급망의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한다.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구조는 중국 경제에도, 한국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부담이 된다. 과거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 경쟁 속에서 경제 협력의 다자 틀을 활용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왔다. 한국 역시 같은 교훈을 참고할 수 있다. 협력의 문을 열되, 방향은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북한 문제는 한·일·중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은 자국민 문제를, 한국은 한반도 안정과 비핵화를, 중국은 국경과 지역 안정을 중시한다. 이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억지로 하나로 묶을 필요는 없다. 이 대통령은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위협의 언어가 아닌 관리와 안정의 언어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의 불안정이 장기화되는 것은 어느 국가에도 이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접근은 중국의 외교적 입장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 긴장이 지역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파급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를 진영 논리가 아닌 안정 관리의 관점에서 다룬다면 중국과의 소통 여지는 넓어진다. 한·일 관계에서 역사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그러나 외교의 목적은 과거의 재판이 아니라 미래의 선택이다. 과거를 덮는 것도 과거에만 머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회담에서 역사 문제를 원칙적으로 다루되 그것이 모든 협력의 전제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는 국내 여론을 존중하면서도 외교의 공간을 유지하는 균형점이다. 중국의 경험 역시 참고할 만하다. 중국은 역사 문제를 중시하지만 동시에 외교 관계 전체를 단일 이슈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이와 유사한 접근을 취한다면 동북아 외교의 예측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국 외교의 목표는 명확하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국익을 넓히되 중국과의 관계를 소모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는 ‘줄타기’가 아니라 정교한 거리 조절의 문제다. 너무 가까워지면 오해를 낳고 너무 멀어지면 비용이 커진다. 이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은 단순하다. 일본과는 차분한 실무 협력자, 중국에는 예측 가능한 이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노자는 물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비유했다. 물은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것을 살린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흐름은 유연하되 방향은 국익을 향해야 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선언문 한 줄이나 사진 한 장이 아니다. 어떤 외교의 구조를 남기느냐다. 일본과는 실용적 협력의 틀을, 중국에는 배제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그리고 국내에는 자율 외교가 가능하다는 신뢰를 남겨야 한다. 한국 외교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와 설계의 문제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6-01-13 09:54:36
-
시도그룹 권혁 회장, 해운 강국의 다음 장을 고민할 시간
[이코노믹데일리] 해운업은 한 나라의 산업 체력을 드러내는 분야다. 수출입 물동량을 실어 나르는 기능을 넘어,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 전쟁과 재난, 공급망이 흔들릴 때마다 해운의 역할이 다시 거론되는 이유다. 최근 해운업을 둘러싼 논의의 방향도 선박 보유량에서 안전과 친환경, 인재로 옮겨가고 있다. 시도그룹 권혁 회장이 몸담아 온 해운업 역시 이러한 전환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과거 해운 경쟁력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배를 확보했는지에 맞춰졌다. 그러나 국제 해운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준은 달라졌다. 사고를 줄이는 안전 체계,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연료 전환,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기술이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운 안전은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선원 교육과 장비, 통신 체계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기 어렵다. 국제 해사기구를 중심으로 안전 규제가 강화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일부 해운 강국에서는 선원과 항만 인력을 대상으로 한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해상 운송 경험에 인공지능 기반 항로 분석과 연료 관리 기술을 결합하는 시도도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시도그룹이 성장해 온 전통적인 해운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친환경 전환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국제 규범은 선박 연료를 기존 중유에서 암모니아나 메탄올 등 저탄소 연료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형 선사들은 이미 선대 교체에 나섰지만, 중소 해운사는 비용 부담으로 전환 속도가 더디다. 일부 국가에서는 민간 자본이 참여하는 전환 펀드를 통해 개조 비용을 분담하고, 상환을 장기화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해운업에 장기간 몸담아 온 경영자일수록 이러한 변화의 무게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연구 개발 역시 해운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 연비 개선, 배출 저감, 사고 예방 기술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정부와 대학, 민간 자본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연구 방식이 늘어나는 이유다. 해양 기술 분야에서는 민간 자본이 마중물 역할을 하며 기술 상용화를 앞당긴 사례도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산업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일회성 기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산업의 다음 20년과 30년을 전제로 한 선택에 가깝다. 해외 해운업계에서 평가를 받아온 자산가들 역시 선박 확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안전과 인재, 기술에 자본을 연결하는 방향을 택했고, 그 과정이 시간이 지나며 신뢰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혁 회장을 둘러싼 논쟁도 이 지점에서 다시 읽힌다. 이미 과거의 사법 판단은 내려졌다. 이후의 관심은 해운업이라는 산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로 옮겨가고 있다. 선대를 확장해 온 경험이 산업 전반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자본이 머무는 방향이 어디로 설정될지가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이유다. 해운업에서 남는 것은 배의 숫자만이 아니다. 사고를 줄였는지, 기술을 키웠는지, 다음 세대가 바다로 들어올 길을 열었는지가 시간이 지나며 기록으로 남는다. 국제 해운 시장에서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선택의 무게도 함께 달라지고 있다. 배를 많이 가진 선주와 바다의 내일을 만든 선주는 같은 평가를 받지 않는다. 해운 강국의 토대는 결국 그 차이에서 만들어진다.
2026-01-13 08:27: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