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담은 한국 외교가 어느 한 편을 선택했는지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일본과의 협력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자동 연결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 자체보다 한·일·중 관계의 설계도에 가깝다.
외교의 출발은 관계 규정이다.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은 오늘날 외교에서도 유효하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 동시에 경쟁적 적대국도 아니다. 역사와 감정의 부담을 안고 있지만 경제·안보·기술 협력이 불가피한 이웃이다. 이 현실을 과장도 축소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회담에서 관계를 ‘가치 동맹’이나 ‘전략적 일체’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관리 가능한 갈등 위에 실용적 협력을 쌓는 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국내 여론에도 중국에도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중국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과도하게 이념화하거나 진영화하지 않는 것은 안정적 신호다. 동북아의 문제는 어느 한 나라의 선택으로 단순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 문제가 언급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을 어떻게 언급하느냐보다 언급하지 않는 방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외교에서는 말보다 맥락이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국을 특정해 ‘위협’이나 ‘리스크’로 규정하는 언어는 불필요하다. 대신 공급망 안정, 예측 가능성, 개방성과 같은 보편적 원칙을 중심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일본과의 협력을 설명하는 데 충분한 언어이며 동시에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은 전쟁을 말하지만 외교에도 적용되는 지혜가 있다. 상대를 직접 겨냥하기보다 구조를 바꾸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중국을 향한 메시지는 일본과의 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협력의 성격과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어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결국 경제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기후 대응 등은 안보와 직결되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협력 분야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영역에서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안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경제 협력의 틀 안에 녹여내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도 실질적 이익을 주고 중국에도 불필요한 경계심을 키우지 않는다. 중국 역시 공급망의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한다.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구조는 중국 경제에도, 한국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부담이 된다. 과거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 경쟁 속에서 경제 협력의 다자 틀을 활용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왔다. 한국 역시 같은 교훈을 참고할 수 있다. 협력의 문을 열되, 방향은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북한 문제는 한·일·중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은 자국민 문제를, 한국은 한반도 안정과 비핵화를, 중국은 국경과 지역 안정을 중시한다. 이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억지로 하나로 묶을 필요는 없다.
이 대통령은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위협의 언어가 아닌 관리와 안정의 언어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의 불안정이 장기화되는 것은 어느 국가에도 이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접근은 중국의 외교적 입장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 긴장이 지역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파급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를 진영 논리가 아닌 안정 관리의 관점에서 다룬다면 중국과의 소통 여지는 넓어진다.
한·일 관계에서 역사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그러나 외교의 목적은 과거의 재판이 아니라 미래의 선택이다. 과거를 덮는 것도 과거에만 머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회담에서 역사 문제를 원칙적으로 다루되 그것이 모든 협력의 전제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는 국내 여론을 존중하면서도 외교의 공간을 유지하는 균형점이다. 중국의 경험 역시 참고할 만하다. 중국은 역사 문제를 중시하지만 동시에 외교 관계 전체를 단일 이슈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이와 유사한 접근을 취한다면 동북아 외교의 예측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국 외교의 목표는 명확하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국익을 넓히되 중국과의 관계를 소모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는 ‘줄타기’가 아니라 정교한 거리 조절의 문제다. 너무 가까워지면 오해를 낳고 너무 멀어지면 비용이 커진다.
이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은 단순하다. 일본과는 차분한 실무 협력자, 중국에는 예측 가능한 이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노자는 물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비유했다. 물은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것을 살린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흐름은 유연하되 방향은 국익을 향해야 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선언문 한 줄이나 사진 한 장이 아니다. 어떤 외교의 구조를 남기느냐다. 일본과는 실용적 협력의 틀을, 중국에는 배제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그리고 국내에는 자율 외교가 가능하다는 신뢰를 남겨야 한다.
한국 외교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와 설계의 문제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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