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SK텔레콤에 대해 정부가 '1인당 30만 원 배상'이라는 구체적인 책임을 물었다. 이는 단순한 권고를 넘어 향후 수많은 소송과 분쟁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SK텔레콤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선제적 보상 노력이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2300만 국민의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 '원죄' 앞에서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산하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3일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분쟁조정 신청인 3998명에게 SK텔레콤이 각각 3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조정안을 의결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지난 4월부터 접수된 집단분쟁 3건과 개인 신청 731건을 병합 심리한 결과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위원회의 깊은 인식이 깔려있다. 앞서 개인정보위 조사 결과 SK텔레콤은 해킹으로 인해 LTE·5G 전체 가입자 2324만4649명의 휴대전화 번호, 가입자식별번호(USIM), 유심 인증키 등 무려 25종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쟁조정위는 "이번 유출 사건으로 가입자들이 유출정보 악용으로 인한 휴대폰 복제 피해 불안과 유심 교체 과정에서 혼란과 불편을 겪었고 정신적 손해를 인정해 손해배상금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2차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포와 일상생활의 불편함까지 배상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제 공은 SK텔레콤으로 넘어갔다. 분쟁조정은 강제력이 없어 15일 이내에 SK텔레콤이 조정안을 수락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만약 거부할 경우 피해자들은 기나긴 민사소송의 길로 나서야 한다.
SK텔레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조정 신청인 약 4000명에게만 배상할 경우 총액은 약 12억원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조정안을 수용하는 순간 이는 향후 2300만명에 달하는 전체 피해자들의 줄소송과 추가 분쟁조정 신청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추가 신청이 들어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동일한 결과로 신속히 조정안을 만들 것"이라고 못 박았다. 산술적으로 전체 피해자가 모두 30만 원씩 배상받을 경우 그 총액은 무려 6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24년 SK텔레콤 연간 영업이익(약 1조7000억원)의 4배가 넘는 금액으로 사실상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재앙적' 수준이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배상 가능성 앞에서 SK텔레콤은 볼멘소리를 냈다. SK텔레콤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회사의 사고수습 및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보상 노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며 "조정안 수락 여부는 관련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신중히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1348억 원이라는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받고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규모 배상은 어렵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SK텔레콤이 말하는 '선제적 보상'은 애초에 기업이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일 뿐 배상액을 깎아달라고 흥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과거 2014년 KT 개인정보 유출 사건 당시 법원이 1인당 1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한 판례(서울중앙지법 2014가합524022) 등을 고려할 때 이번 30만원이라는 배상액은 결코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결국 이번 조정안은 SK텔레콤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눈앞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조정안을 거부하고 수많은 국민을 기나긴 소송전으로 끌고 갈 것인가 아니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대한민국 1위 통신사업자의 '책임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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