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초점(焦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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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림 부장
2023-03-15 14:10:10
[이코노믹데일리] 흥망성쇠(興亡盛衰). 나라 또는 집안 등이 흥하고 망하고, 융성하고 쇠퇴함을 계속 순환하고 반복함을 의미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때 잘나가던 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무수히 지켜봐왔다. 그 과정에 늘 관심의 대상이 존재한다.

1979년 3월, 당시 합자회사였던 우성주택을 흡수합병해 설립한 ㈜우성건설은 서울 대치동, 잠실동 등에 주택을 건설하며 인기를 끌었다. 점차 사업다각화를 하면서 몸집을 키운 우성건설의 최승진 사장은 유통, 타이어와 모직업, 관광업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결국 1988년 우성그룹은 우성건설 등 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매출 2630억원으로 재계 39위에 이름을 올린다. 최 사장은 우성그룹 부회장이 됐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우성’은 명품 아파트 브랜드로 자리잡으며 승승장구했다. 우성건설은 1989년 아파트 건설 국내 1위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우성그룹은 1996년 매출 1조2000억원, 총 자산 2조1000억원으로 재계 27위에 올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가던 우성그룹에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그룹에 자금경색이 심화됐고,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쌓이며 건설도 상황이 나빠졌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이 실책이었다.

설상가상,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는 직격탄이 됐다. 삼풍백화점의 일부 층을 우성건설이 시공해 임원진이 검찰에 소환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결국 1996년 1월 우성그룹은 돌아온 어음 169억원을 처리하지 못해 1차 부도처리 됐으며 2000년 파산선고를 받아 최종 도산했다.

최승진 부회장은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넷째 딸인 서미숙 씨와 이혼했다는 소식만 전해지고 이후 행적이 묘연했다. 일각에서는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룹이 청산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국에서 우성아파트는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118 (도곡동)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우성캐릭터빌은 사실상 마지막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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