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데스크 칼럼] 사기(士氣)와 사기(詐欺) 그리고 사기(史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권석림 부장
2024-03-20 15:12:52
권석림 건설부동산부장
권석림 건설부동산부장
[이코노믹데일리] 사기(史記).

동양뿐 아니라 세계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유언에 따라 완성한 역사서다. 

역사상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인간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파헤친 인간학의 보고(寶庫)라고 보고 있다. 

역사 속에 명멸해 간 제왕과 제후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과 각국의 생존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개개인들의 힘겨운 삶이 곳곳에 각인돼 있다. 

2024년 2월 7일. 인천지법 324호.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수백억원을 앗아간 남헌기(62)의 1심 선고 재판이 열렸다. 남씨 등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91채의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은 전체 혐의 액수 453억원(563채) 가운데 148억원에 대해서만 열렸다.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청년이나 신혼부부, 고령층이었다. 

재판의 쟁점은 1차 기소된 남씨 사건에 대한 사기죄 인정 여부. 연녹색 수의를 입은 남헌기 일당은 행복마을 주민 191명을 속여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법정에 섰다.

판사는 그동안 재판에 출석한 피해자들의 호소와 사연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자 법정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려왔다. 피해자의 원한 맺힌 울부짖음이다.

피해자 A씨는 “우리는 365일 야간작업을 하며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데, 너무 힘이 든다. 전세사기를 당하고 나서 삶이 송두리체 깨졌다. 지난해 딸 결혼식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자살시도까지 했다”며 통곡했다.

한 피해자의 엄마는 “사기로 인해 생긴 빚이 이렇게 큰데, 이 사실을 나중에라도 만날 이성에게 사실대로 말하기 겁난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결혼도 포기해야 한다”며 망연자실 했다. 그는 “공인중개사, 집주인, 그 집주인 위에 있는 사람, 다 한통속이 돼 사람의 일상을 이렇게까지 망쳐도 되는 것이냐”라며 울부짖었다.

이러한 울부짖음은 이어진 판결이 더욱 목을 메이게 했다. 판사는 남헌기에게 현행법상 사기죄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일당 9명에겐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진행된 1심 선고, 결과에 목 말라한 주민들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1단지 세입자 절반은 경매에 집이 넘어가 쫓겨났거나 빚을 내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갔고, 전세보증금을 떼인 청년 등 행복마을 주민 4명이 삶의 끈을 놓았던 참담함에 비해 너무 나도 아쉬운 판결이었다. 특히 피해자와 가족들에게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됐다니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사기죄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한도는 최대 징역 15년이고, 이를 넘어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사는 “다수 피해자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질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이례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 재산이자 거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는 등 범행 동기나 수법은 매우 불량하다. 주택, 임대차 거래에 관한 사회 공동체의 신뢰도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이쯤에서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들여다보자. 

사기의 화식(貨殖)열전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재물이란 것은 능력만 있으면 하염없이 긁어모으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누군가 "법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법이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으로서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공동생활의 기준이라면, 그 법이 우리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할 것이다. 평범한 국민의 사기(士氣)를 꺾지는 말아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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