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공학도 회장님'···조석래 명예회장 89세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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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 기자
2024-04-01 18:34:57

'기술'의 중요성 일찌감치 깨달아 美·日서 공학 공부

뚝심있는 기술개발로 듀폰 꺾어

소탈했던 생전 모습도 다시금 주목

2013년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고 있는 故 조석래 명예회장중앙 왼쪽사진효성
2013년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고 있는 故 조석래 명예회장(중앙 왼쪽) [사진=효성]
[이코노믹데일리] 공학도 출신 재벌 회장으로 유명했던 효성그룹 조석래 명예회장이 지난 29일 향년 89세로 영면에 들었다.

◆공학도 출신 회장님

조 명예회장은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교수를 준비했다. 일리노이 대학교 화학공학과 석사였던 그는 아버지인 고(故) 조홍제 효성 초대 회장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와 경영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조 명예회장은 효성의 모태인 동양나이론 울산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효성그룹을 이끌며 섬유, 첨단소재, 중공업, 화학에 이르는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업적 중 무엇보다 빛나는 점은 '기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저렴한 인건비로 만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던 시절이었다. 반면 조 명예회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이나 철학 등을 전공하지 않고 공학을 배우며 이른 시기부터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일찌감치 시작한 '기술 경영'

그의 경영 방식도 '뚝심 있는 기술 개발'로 통한다. 효성TNC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있는 '스판덱스'가 그의 경영 방식을 잘 보여준다.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공급망 확대, 품질 개선, 철저한 시장 분석을 이어온 결과 세계적 섬유 회사인 미국 듀폰사를 앞지를 수 있었다.

첨단산업에 대한 개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친환경적이면서 강한 섬유 소재로 개발한 '폴리케톤', 강철보다 10배나 강력하면서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해 '탄소섬유', 원천기술 확보로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는 ‘TAC 편광판 보호 필름'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노력했다.

그가 신혼여행의 행선지로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연수를 받던 지역을 택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대단히 강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은 어록에서도 드러난다. 2001년 '올해의 효성인상' 시상식에서 그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연구 부문에서는 독자 기술을 개발해 경쟁력의 바탕으로 삼고, 영업 일선에서는 가장 먼저 고객에게 달려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요구를 만족시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00년대부턴 재계 큰 어른으로 활동

한편 2000년대 들어선 민간 영역의 경제 외교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 유창한 어학 실적으로 세계 경제인들과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에도 조석래 회장이 2000년부터 한미 재계 회의를 통해 필요성을 공식 석상에서 최초로 제기한 바 있다.

여러 활동을 거쳐 재계 원로까지 오른 그는 2007년부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리를 맡아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했다. 세계적인 인적 네트워크와 리더십으로 전경련을 개혁하며 정부에 다양한 제안을 통해 2008년 금융 위기 속에서 경제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생전에 소탈했던 모습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혼자 다닐 정도로 허례허식을 싫어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는 "홍콩 주재원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와서 내려가 보니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고 조 명예회장의 일화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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