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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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신앙의 얼굴을 한 위험, 사회는 왜 늘 뒤늦게 놀라는가
종교는 조용히 인간을 위로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반대로 소리를 높이고 확신을 강요하는 순간 가장 위험해진다. 이 단순한 원칙을 인류는 수없이 경험해 왔지만 우리는 늘 비슷한 장면 앞에서 다시 놀라고 다시 분노하고 다시 잊는다. 최근 진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이 주요 종교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이비 종교는 척결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그래서 시의적절하면서도 불편한 발언이다.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기에는 사회가 이미 치러온 대가가 너무 크다. 사이비 종교는 특정 국가나 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일본 사회가 1990년대 중반 겪었던 옴진리교의 사린 가스 테러는 집단적 광신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종말과 구원의 언어는 그럴듯했지만 그 끝은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충격에 빠졌지만, 사후 분석의 결론은 늘 같았다. 경고 신호는 분명히 존재했고 사회가 그것을 외면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최근의 일본 현대사 역시 종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베 전 총리 암살 사건은 정치 테러라는 형식을 띠었지만 가해자의 진술은 전혀 다른 지점을 가리켰다. 그는 어머니가 통일교에 깊이 빠져 가정이 붕괴됐고 그로 인한 원망과 절망이 왜곡된 분노로 폭발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특정 종교를 단죄하는 문제를 넘어, 한 개인의 삶이 종교를 매개로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에 가깝다. 종교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가족과 생계까지 집어삼킬 때 사회는 더 이상 방관자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얼마나 강하게 부르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구조다. 사이비 종교의 특징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지도자는 절대화되고 교리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으며 신도는 조직을 위해 개인의 삶을 유보하도록 강요받는다. 헌금은 신앙의 증명으로 바뀌고 고립은 순수성으로 포장된다. 이 과정에서 법과 상식은 언제나 한 발 뒤로 밀린다. 그 결과는 대체로 같다. 경제적 파탄, 가족 해체, 그리고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다. 종교의 자유는 민주사회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자유에는 전제가 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을 것, 법의 테두리 안에 머물 것. 이 최소한의 조건이 무너지는 순간, 종교는 더 이상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이동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냉정한 원칙이다. 진우 스님의 발언이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불교계의 수장으로서 종교가 스스로를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종교가 종교를 향해 “이 선은 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공격이 아니라 자정이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교인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종종 종교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인간을 구원한다는 이름으로 인간을 가난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만든다며 개인을 고립시키며 평화를 말하면서 갈등을 키운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종교는 이름이 무엇이든 국적이 어디든 이미 본질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사이비 종교를 경계하자는 말은 종교를 부정하자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가 다시 신뢰받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확인하자는 요구다. 종교는 인간 위에 군림할 때가 아니라 인간 곁에 머물 때 의미가 있다. 사회가 이제라도 이 오래된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다음 비극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놀라운 사건은 늘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시간 준비돼 온 경우가 많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신앙의 얼굴을 한 위험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숙한 사회의 출발점이다.
2026-01-21 11: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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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 ⑤】 중국의 애국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코노믹데일리]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중국의 애국주의를 ‘감정적 분노’로만 해석하는 시각이다. 반외세 시위나 온라인 민족주의, 강경한 외교 발언이 등장할 때마다 “중국인은 감정적이다”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중국의 애국주의를 감정의 폭발로만 이해하는 순간, 중국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은 보이지 않게 된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자발적 감정보다 국가가 설계하고 관리하는 체계에 가깝다. 중국에서 애국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의 일부다. 중국인은 학교 교육과 미디어, 공식 역사 서술을 통해 국가 중심의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학습한다. 애국주의는 일시적 동원이 아니라 장기적 설계의 결과이며 이 점에서 중국은 다른 국가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 애국주의의 출발점은 역사 인식이다. 중국의 공식 역사 서술은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침략당하고 분열됐던 ‘굴욕의 근대사’를 핵심 축으로 삼는다. 중국은 스스로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 피해자 서사를 통해 현재의 국가 통합과 체제 정당성을 설명한다. 중국에서 애국은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는 행위이자, 다시는 그런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집단적 다짐이다. 이 때문에 애국주의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국가 안정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된다. 애국을 부정하거나 상대화하는 행위는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 같은 인식은 교육 제도를 통해 일상적으로 강화된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는 개인의 해석보다 국가 서사를 우선하며 역사 인식은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구성 요소로 다뤄진다. 애국 교육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캠페인이 아니라 상시적 학습 과정이다. 중국 미디어 역시 애국주의 시스템의 핵심 축이다. 국영 언론과 주요 플랫폼은 외부 세계를 경쟁적 환경으로 묘사하며 중국의 발전을 위협하는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만 중국의 애국 담론이 항상 감정적 분노를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국가 입장을 설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국주의는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통제된 정서로 관리된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위로부터의 강요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일정 수준의 내부 합의가 존재한다. 경제 성장과 국제적 위상 상승은 애국주의에 현실적 기반을 제공했다. 과거의 피해자였던 중국이 다시 강대국이 되고 있다는 서사는 많은 중국인에게 설득력을 갖는다. 애국은 희생의 강요라기보다 성취의 공유로 인식된다. 이 점에서 중국의 애국주의는 한국이나 서구 국가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의 애국주의가 위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분출되는 경향이 있다면 중국의 애국주의는 상시 작동하는 체계에 가깝다. 애국은 특정 사건에 반응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규범이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외교 정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이를 내부 결속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외부의 비판과 갈등은 애국 담론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며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 정서는 계산된 방식으로 동원된다. 분노를 키울지, 식힐지는 국가가 조절한다. 흔히 중국의 ‘전랑외교’를 감정적 외교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계산된 메시지 전달에 가깝다. 강경 발언은 외부를 향한 신호이자 내부 여론을 안정시키는 장치다. 중국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국의 반응보다 내부 결속이다. 애국주의는 외교 전략의 일부로 기능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 구조는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 SNS에는 민족주의적 발언이 넘쳐나지만 허용되는 애국과 금지되는 애국의 경계는 명확하다. 국가의 공식 입장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애국적 표현이 허용된다. 통제되지 않는 분노는 애국이 아니라 불안 요소로 간주된다. 외부에서는 이를 위선적으로 볼 수 있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합리적인 관리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애국주의는 체제 안정의 자원이자 동시에 잠재적 위험 요소다. 중국 정부는 이를 활용하되, 체제에 위협이 될 수준으로 방치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중국의 애국주의를 이해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적 대응이다. 중국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 받아치면 갈등은 증폭된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응은 엇나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애국주의를 이해한다고 해서 이를 존중하거나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중국이 왜 특정 사안에서 물러서지 않는지, 왜 외부 비판에 과민하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 판단의 출발점이다. 중국은 애국주의를 통해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고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단기간에 약화되기 어렵다. 국제 질서가 불안정해질수록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외부 압력이 커질수록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이 반복해온 전략이다. 이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반응이다. 중국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애국주의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 사회가 어떻게 결속되고,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애국주의를 감정으로만 보면 중국은 늘 분노하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으로 보면 중국은 매우 계산적인 국가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감정이 아니다. 국가 운영의 한 축이며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중국은 예측 불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분석 가능한 상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분석 가능한 상대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의 대상이다.
2026-01-19 17: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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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코노믹데일리] 중동이 다시 불안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 전역에서 확산된 대규모 항의 시위와 이에 대한 강경 진압은 단순한 내정 문제가 아니다. 국가 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어디까지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자 중동 질서 전반의 불안정을 자극하는 위험 신호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성직자 통치’라는 체제 아래 국가 운영의 핵심을 신정 권력에 고정해 왔다. 통치 이념이 신앙의 절대성을 앞세우는 순간, 정치는 타협을 잃고 제도는 책임을 잃는다. 그 결과는 언제나 시민의 삶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최근 이란에서 시작된 시위가 물가 급등과 생활고에서 출발해 정권 전반에 대한 분노로 확산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생은 정치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지표다. 빵값과 연료비, 생필품 가격이 오를 때 체제에 대한 불만은 추상적 비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전환된다. 오늘의 이란은 경제적 고통이 어떻게 정치적 저항으로 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사회가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첫째, 국가 폭력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기반 인권단체(IHR) 등 국제 인권기구들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추정치를 내놓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떠나, 국가가 시민을 향해 조직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그 정당성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다. 둘째, 이 위기가 중동 전체의 지정학적 긴장을 증폭시킬 가능성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살해가 중단됐다고 들었다”, “처형 계획은 없다”는 식의 완화된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동시에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군사 옵션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인권 침해가 외부 개입의 명분으로 전환되는 순간, 중동은 다시 힘의 계산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결코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체제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이란 정치 체제의 핵심으로 알려진 ‘성직자 통치(벨라야트-에 파키흐)’는 성직자가 국가를 지도할 정당성을 가진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이 논리가 절대화될 경우 시민의 권리는 권력에 의해 허용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법치는 정치 권력의 하위로 밀려난다.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신앙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신앙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는 통치 구조다. 신앙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지만, 국가 권력이 이를 독점하는 순간 정치적 다양성은 배제되고 반대 의견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생명과 자유, 적법절차를 훼손하는 폭력은 어떤 이념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사태를 둘러싼 국제 역학 또한 냉정하다. 중동은 오랜 기간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종파 구도가 정치·안보 동맹과 결합해 굳어져 왔다. 이란의 영향력 약화를 반기는 세력이 있는 한편, 체제 붕괴가 내전과 난민, 국경 불안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이란이 심각한 혼란이나 내전으로 치달을 경우 난민 증가와 국경지대 불안, 역내 세력 균형의 붕괴는 피하기 어렵다. 이 틈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박이 군사 충돌로 비화한다면 그 피해는 다시 시민의 몫이 된다. 정권의 생존 논리와 외부의 군사적 계산이 맞물릴수록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서민의 일상이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시민의 생명을 즉각 보호해야 한다. 진압 중단과 구금자·수감자의 적법절차 보장, 표현과 집회의 자유 회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 둘째, 통치의 정당성을 신정의 절대성에서 책임 정치와 권력 분립, 법치로 옮겨야 한다. 셋째, 경제를 민생의 언어로 재건해야 한다. 외부 제재를 탓하기에 앞서 부패와 특권, 폐쇄적 구조를 끊고 통화·물가 안정, 일자리 창출, 생필품 공급망 복원에 나서야 한다. 넷째,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전쟁의 경계가 아니라 신뢰의 경로로 전환해야 한다. 긴장을 낮추는 투명성과 안전장치 없이는 제재 완화와 투자, 교역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 역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시민 보호라는 명분이 군사 개입의 자동 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력 충돌은 단기적 정권 타격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 사회 재건과 평화에는 더 큰 비용을 남겨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실의 검증, 인권 보호, 외교의 공간, 그리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국제적 협력이다. 이란은 우리에게 거울이다. 이념이 제도를 압도하고, 권력이 책임을 거부하며, 폭력이 일상을 잠식하는 순간 국가의 미래는 급속히 소진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어느 문명권에서도 타협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정치는 총과 교수대가 아니라 밥과 일자리, 교육과 법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란이 변해야 하는 이유는 체제의 승패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는 길이야말로 중동의 평화를 향한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2026-01-15 10: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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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더 이상 국정의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코노믹데일리] 대장동 문제는 이미 너무 오래 한국 사회의 에너지를 삼켜왔다. 정치권은 끝없는 공방을 이어가고, 일부 세력은 사실관계와 상관없는 주장까지 동원하며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 이 사안은 정치적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이재명 대통령을 끝없이 끌어들여 국정 동력을 소모시키는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대장동 사업의 본질은 분명하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코로나 사태의 충격으로 급속히 하강하던 국면이었다. 그런 시장 환경에서 고위험 개발 프로젝트였던 대장동 사업은 누구도 폭등을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성남시가 공공의 몫을 사전에 확보한 것은 당시 기준으로 최선의 행정적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후 전 세계적 저금리와 유동성 과잉이 겹치면서 부동산 시장은 급반전했고, 그 과정에서 민간 사업자들의 이익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이 불로소득적 개발이익을 어떻게 환수하고, 어떤 법적 책임을 묻느냐가 지금 우리가 다뤄야 할 정책적 과제의 핵심이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다. 민간 업자들의 과도한 이익과 그 과정에서의 불법·비리를 조사하고, 환수할 것은 환수하는 것. 이것이 국가가 취해야 할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대응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권은 이 문제를 ‘대통령 흔들기’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대통령을 앞장세워 끌어들이고, 사안을 끝없는 정치적 투쟁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국가적 손실이며, 국정 운영 전체를 흔드는 위험한 일이다. 진실은 단순하다.대장동 사업에서 민간이 가져간 초과이익은 시장 급변이라는 외부 변수의 산물이다. 행정의 문제라기보다, 부동산 시장의 비정상적 폭등이 만들어낸 구조적 현상이다.따라서 해법 또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대장동을 '개발이익 환수 제도의 전면 재정비'라는 원점에서 다뤄야 한다.이 사안을 특정 정치인에 대한 공격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국민의 눈을 가리고 국익을 희생시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대장동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비이성적 정치투쟁을 멈추고, 정책적 문제를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다. 이제는 대장동을 둘러싼 정쟁의 시대를 끝내고,제도 개선과 공정한 환수라는 정상적 국정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2025-11-20 09: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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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하는 의사, 줄사표 던지는 검사… 책임은 없고 권한만 챙기는 '엘리트의 일탈'
[이코노믹데일리] 최근 의료대란에 이어 검찰에서까지 검사장들의 줄사표 사태가 벌어지며 우리 사회의 핵심 전문직 집단이 얼마나 쉽게 공공성을 저버릴 수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생명과 정의를 책임진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직역 이익’이나 ‘조직 내부 갈등’ 앞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집단적이고 공격적인 저항을 선택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회 지도층이자 오피니언 리더로 여기지만, 정작 국민 앞에서는 책임보다 권한을 먼저 행사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의료대란과 줄사표 사태, 본질은 같다 의사들의 대규모 진료 거부는 국민 생명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은 것이고, 검사장들의 줄사표는 국가 형벌권을 담당하는 조직의 안정성을 자기들 내부 정치의 희생양으로 만든 것이다. 한쪽은 환자를, 다른 쪽은 형사 정의를 뒤흔드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 본질이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특히 검사장들의 줄사표는 그 자체만으로 조직의 상층부가 공적 책임을 방기했음을 보여준다. 특정 사건의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견’이 ‘항명’으로, 항명이 ‘줄사표’로 이어지는 것은 이미 공적 판단의 선을 넘어선 행위다. 사표는 의견 개진이 아니라 압박 수단으로 이해된다. 국가기관의 권한이 사조직 내부의 파워게임에 악용되는 셈이다. ◇공공 권한은 집단이기주의의 자산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들은 공적 권한을 갖고 있지만, 공적 책임은 종종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한다. 의사 면허와 판·검사의 직무는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수호하라는 권능이자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위기 순간마다 책임을 내던지고,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앞세운다. 의사 파업으로 응급실이 마비되고, 검사 줄사표로 사법 시스템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은 단순한 갈등이나 잡음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이들의 행동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급격히 키운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부 갈등을 왜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가 검사장 줄사표 사태는 그야말로 조직의 난맥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공직자라면 마땅히 내부 의견 차이를 공식 절차를 통해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절차는 뒷전이고, ‘집단 사표’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태도다. 이는 사법 정의의 연속성을 해칠 뿐 아니라, 검찰 조작·정치 개입 논란을 경험해온 국민에게 또 다른 불신의 근거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줄사표는 공공선의 실종을 넘어 조직의 신뢰 자체를 허무는 행위다. ◇국민 신뢰를 잃은 지도층은 더 이상 지도층이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의사·판사·검사 등 전문직에 높은 권위와 신뢰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신뢰의 대가’였음을 종종 잊고 있다. 그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그 권한 역시 지속될 수 없다. 요구가 있다면 대화하고 조정하면 된다. 이견이 있다면 제도 안에서 해결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선택한 것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국가 시스템을 흔들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방식이었다. 이는 더 이상 지도층이 아니라, 단지 권한을 지렛대로 삼는 집단이기주의의 극단적 형태일 뿐이다. ◇이제는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전문직 집단의 파업과 줄사표 사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정말로 사회의 지도층인가, 아니면 특권층인가?” 특권이 아닌 지도층으로 남고 싶다면 답은 명확하다. 국민을 협상 수단으로 삼는 행태부터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의사든 판사든 검사든, 공적 권한을 가졌다면 공적 책임을 회피할 권리는 없다. 국민의 신뢰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신뢰를 잃는다면, 이들 전문직 집단의 권위도 결국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2025-11-18 09: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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