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한파·르네사스 화재에 이어 TSMC에서도 화재가 일어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특히 미리 물량을 확보해 놓았다고 발표했던 현대차와 기아까지 감산 조짐을 보이면서, 반도체 부족이 EV6 등 신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2일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일,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제조)업체 TSMC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난 곳은 TSMC의 연구개발·시험 양산 공장인 대만 북부 신주 과학단지 내 12공장이었으며, 공장 변전소에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불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연기에 질식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화재로 인한 정전이 반나절 이상 이어져, 업계 전문가들은 12공장의 완전 가동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예상한다.
TSMC 측은 “사고 당일 저녁부터 전기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며 “생산에는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화재만큼이나 TSMC에 악재가 되는 것은 대만의 ‘가뭄’이다.
앞서 지난달 24일 대만 정부는 “수십 년래 최악의 가뭄으로 저수량이 고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도체 제조 허브를 포함한 지역에 대한 물 공급을 줄였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특히 타이중에 있는 두 곳의 주요 산업단지에 물 공급을 15% 줄이기로 했는데, TSMC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공장이 모두 타이중에 있다.
대만 정부는 해당 조치가 TSMC의 조업을 중단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가뭄이 계속되면 공장 가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난 19일 화재가 발생한 일본 최대 반도체 회사 ‘르네사스’도 TSMC에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르네사스는 현재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전 세계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지난달 30일 카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성 장관은 “르네사스 공장 화재와 관련해 일부 대만 반도체 업체에 대체 생산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화재가 발생한 르네사스의 나카 공장은 자동차용 반도체 주력 공장으로, 업계에서는 공장 정상화에 최대 4개월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미쓰비시증권은 화재가 발생한 르네사스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이 생산을 재개하더라도 도요타·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의 생산량은 기존 전망치보다 165만대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르네사스와 TSMC는 현대차와 기아에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르네사스가 S0S를 청한 TSMC까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반도체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현대차·기아에 대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에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NXP와 인피니온도 지난 2월 텍사스 한파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중지됐었고, 정상화에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로 오는 7일부터 14일까지 울산1공장의 휴업을 결정했다. 기아도 4월 특근을 없애는 등 감산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수위권 반도체 기업들의 잇따른 악재로 현대차와 기아의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EV6 등 신차의 가격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공급 부족으로 반도체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면 차량 가격도 인상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1차 협력사들의 차량용 반도체 재고 물량이 오는 5월이면 대부분 소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차보다 많은 500여개의 반도체가 사용돼 신차 생산과 가격에 대한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TSMC와 UMC 등 대만업체들은 이미 고객들이 긴급 주문을 할 경우 10% 정도의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판매 브로커들도 가격을 2~30배 높게 부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테슬라는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올해 초 중국에서 출시한 SUV ‘모델Y’의 판매 가격을 약 150만원 인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