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데일리] 애플이 내년 상반기쯤 구글의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음성비서 ‘시리(Siri)’를 전면 개편한다. 자체 AI 모델 개발이 기술적 한계와 내부 혼선으로 지연되자 최대 경쟁사의 기술을 빌려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8일 IT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월드 놀리지 앤서스(World Knowledge Answers)’라는 이름의 새로운 AI 기반 웹 검색 기능을 시리에 우선 적용한 뒤 사파리 브라우저와 스포트라이트 검색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웹 검색, 문서 요약, 계획 설정 등 방대한 클라우드 연산이 필요한 작업은 구글의 ‘제미나이’가 담당하고 개인 일정·사진 등 민감한 데이터 처리는 애플이 자체 개발 중인 ‘애플파운데이션모델(AFM)’이 기기 내에서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보호하겠다는 애플의 보안 철학을 지키면서 뒤처진 AI 성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는 절충안으로 분석된다.
애플의 이러한 결정은 자체 AI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음을 방증한다. 애플은 당초 자체 개발한 AI 모델 기반의 시리를 2024년 가을에 선보일 계획이었으나 기술적 문제로 계속 지연돼 왔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오픈AI, 구글 등 외부 모델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는 자체 모델 개발을 주도하던 핵심 인재들의 연쇄 이탈로 이어졌다. AFM 개발을 총괄하던 루밍 팡 임원의 퇴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내부적으로 애플은 자체 모델 ‘린우드(Linwood)’와 외부 모델 활용 ‘글렌우드(Glenwood)’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베이크오프(경쟁)’ 전략을 취했지만 결과적으로 외부 모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도 팀 쿡 애플 CEO는 지난달 전 직원 회의에서 “우리는 많은 시장을 지배한 경험이 있다. AI 분야서도 성공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단기적으로는 구글과의 협력에 의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AI 독립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 등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월 온디바이스 AI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내 데이터센터와 서버 시설에 5000억 달러(약 70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경쟁사의 힘을 빌려 시간을 버는 동안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AI 기술 격차를 따라잡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