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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 가득한 '덕질의 경제학'] "나의 오스칼"…영혼을 관통한 내 첫 '덕사랑'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경아 기자
2025-08-10 06:00:00

장군의 딸 오스칼이 호위무관을 맡은 마리 앙뜨와네트와의 우정과 결벌, 그리고 혁명

20년전 산 국내 최초 정식 번역본 세트, 국내 중고시장에서 6배가량↑​

올해 4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 넥플릭스에 업로드된 극장판 에니메이션 베르사이유의 장미 포스터의 일부중앙은 군복 입은 입은 오스칼과 마리 앙뜨와네트 그리고 앙뜨와네트 쪽에 붉은 장미를 들고 선 남성이 페르젠 백작 오르칼 뒷면을 지키는 앙드레는 흰색 장미를 들고 있다사진넷플릭스
올해 4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넥플릭스에 업로드된 극장판 에니메이션 '베르사이유의 장미' 포스터의 일부.중앙은 군복 입은 입은 오스칼과 마리 앙뜨와네트 그리고 앙뜨와네트 쪽에 붉은 장미를 들고 선 남성이 페르젠 백작, 오르칼 뒷면을 지키는 앙드레는 흰색 장미를 들고 있다.[사진=넷플릭스]

[이코노믹데일리] 덕질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수익이 되기도 한다. 칼럼과 기사 사이의 길을 걷게 될 이번 기획은 한때 덕질에 인생을 걸었던, 아니 지금도 덕질 중인 이가 가슴에 가듯한 사심을 소소하게 풀어보는, 덕질의 경제학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덕질이 본질, 경제학은 고명쯤임을 밝혀둔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0년, ‘그 책’을 처음 만났다. 그 무렵 일본 만화책들이 해적판 형태로 국내에 들어왔고, 그중 눈에 띈 건 ‘베르사이유의 장미’였다. 장군 집안 막내딸로 태어나 아들로 키워진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1789년 프랑스혁명의 날 숭고한 죽음을 맞을 때까지 군복을 입고 무인(武人)으로 살아면서도 따스한 마음을 잃지않았고, 고통받는 프랑스 국민을 위해 단호하게 평민의 편에 선 오스칼의 정의로움은 단숨에 내 영혼을 관통하는 듯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난 오스칼을 통해 배웠다. 휴머니즘 그리고 진정한 사랑도. 정략결혼으로 프랑스에 온 마리 앙투아네트, 귀족의 사생아 로잘리, 그리고 오스칼의 하인이자 친구이며 영혼의 반려자인 앙드레…이들 이름들은 나의 청춘과 함께 자라났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으며 어느 순간 오스칼이 생을 멈춘 나이를 지났고, 그래도 문뜩문뜩 오스칼을 떠올린다. 
 
1789년 7월 17일 프랑스 도심에서 굶주린 시민들의 분노가 폭동이 번지자 오스칼은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시민편에 서는 걸정을 내린다사진베르사이유의 장미8권 中
1789년 7월 17일 프랑스 도심에서 굶주린 시민들의 분노가 폭동이 번지자 오스칼은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시민편에 서는 걸정을 내린다.[사진='베르사이유의 장미'8권 中]

용돈을 모아 학교 앞 서점겸 문구점에서 해적판 전권을 어렵게 모았고, 20년 가까이 책장을 지키던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회사 후배가 못봤다며 빌려 달라더니 나중엔 “멀리 사는 조카가 가져갔다”라 했다. 상실의 충격에 이 일은 종종 꿈에까지 나왔고, 나는 깨달았다. 덕질은 애정이 아니라 집착에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집작은 배타적 속성이 강한 반면 덕질은 너그럽게 대상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지금도 온라인 곳곳에서 ‘베장’ 덕후들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그렇게 ‘잃어버린 나의 베장’은 2002년, 기적처럼 돌아왔다. 국내에서 처음 정식출간된 전집을 발견하고 3만6000원에 다시 그 베장을 외전까지 한세트 모두 내 품에 안았다.

얼마 전 중고 사이트를 뒤적이다 우연히 보게 된 일이다. 지금 그 책은 중고 거래가로 약 20만원을 호가한다. 그새 무려 6배가량 오른 것이다. “아… 내가 이걸 갖고 있다니 뿌듯하다. 역시 나는 안목 있는 덕후야!ㅎㅎ”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감정. “근데 왜 그때 한 세트만 샀지? 두 세트, 아니 세 세트쯤 샀다면 지금쯤 약간의 덕테크는 성공한 거잖아?”
내가 집에서 20년째 넘게 보관 중인 베르사이유 장미의 첫 국내 정식 번역판 번외편까지 총 12권은 이사 때마다 부동산계약 문서노트북 등과 함께 승용차로 따로 모신다사진박경아
내가 집에서 20년째 넘게 보관 중인 '베르사이유 장미'의 첫 국내 정식 번역판. 번외편까지 총 12권은 이사 때마다 부동산계약 문서,노트북 등과 함께 승용차로 따로 모신다.[사진=박경아]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나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왕 사는 거 한 벌 더 사. 하나는 읽고, 하나는 포장 뜯지도 말고 보관해. 그게 바로 미래의 너를 위한 선물이야.” 그렇게 나는 ‘한정판을 사서 뜯지 않고 보관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때 그 만화를 샀던 사람’이란 사실에 약간의 자부심과 아쉬움을 동시에 갖는다.

“내 오스칼은 욕실 커튼이 아니야!”

내가 오스칼을 처음 본 건 흑백 해적판 만화 속이었다. 피규어도 스티커도 없던 시절, 덕질은 순전히 종이와 상상력 그리고 감정의 문제였다. 요즘은 다르다. 멋진 비율의 오스칼 피규어도 있다. 일본 여성극단이 197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공연하던 뮤지컬 버전이 극장용 에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지난 4월부터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몇몇 핵심 인물과 사건들이 빠져 좀 아쉽지만 그저 오스칼의 멋진 모습 보는 맛에 4번이나 봤다. 다국적 온라인 구매 플래폼 테무를 보면 ‘베르사이유 장미’ 등장 인물들이 프린트된-정식 저작권료 지급 여부가 의심되는 욕실 커튼, 벽 장식, 소파 담요, 심지어 양말까지 팔고 있다. 나는 그걸 보고 문득 생각했다. “나의 오스칼을, 그렇게까지 혹사시키고 싶지는 않아.”

피규어는 가끔 유혹이 된다. 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표정을 볼 때면 그건 내 오스칼이 아니어서 결국 클릭을 멈추게 된다. 덕질은 때론 소비의 끝을 향해 달리기도 하지만 내게 오스칼 덕질은 존재를 지켜주는 애틋한 감정이 존경심이다. 1970년대 출간된 만화가 50년간 인기를 이어오며 굿즈는 다양하고 많아졌지만 진짜 오스칼은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가장 값진 소장일지도 모른다. 
레고로 만든 오스칼
한 레고블로거가 레고로 만든 오스칼.​ 이 정도면 '덕후계 장인'으로 인정(이거 만드신 분~ 제게 손! 출처를 알려주셔야 크레디트 달 수 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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