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경주를 위해 탄생한 브랜드 '벤틀리'
벤틀리의 역사는 1912년 월터 오웬 벤틀리와 호레이스 밀너 벤틀리가 '벤틀리모터스'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벤틀리는 자체 제작 차량이 아닌 프랑스 기업 'DFP(Doriot·Flandrin & Parant)'의 모델을 수입해 판매했다.
자동차 경주를 즐기던 월터 벤틀리는 자신이 판매하던 DFP 모델 엔진을 직접 개조해 애스톤 클린튼 언덕 경주에 참여했고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벤틀리는 자동차 생산에 돌입했다.
벤틀리는 '좋은 차, 빠른 차, 최고의 차(Good car, Fast car, Best car)'란 슬로건을 내걸고 1919년 브랜드 최초 모델 '3리터'을 선보였다. 이 모델은 직렬 4기통에 배기량은 2996㏄였으며 한 개의 실린더에 밸브 4개가 적용된 '4밸브 타입'이었다. 또 실린더 하나에 두개의 점화플러그가 처음 적용된 엔진이기도 했다. 최고출력은 70마력이며 시속 129㎞에 달해 당시 자동차 경주에서 선두권을 달리던 프랑스의 부가티를 제치는 등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24시간 동안 서킷을 가장 많이 달린 자동차가 우승하는 경기인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명성을 쌓았다. 3리터는 1924년과 1927년 모두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뒤이어 출시된 '4.5리터'가 이듬해에 우승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1929년에는 '6.5리터'의 스포츠버전인 '스피드 식스', 1930년 '6.5리터'가 우승하는 등 4년 연속 우승이란 기록을 세웠다.
벤틀리는 압도적인 성장세를 뽐내며 영국 시장에서 롤스로이스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한 벤틀리는 1929년 대공황이라는 위기를 맞았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벤틀리는 결국 롤스로이스에 인수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하지만 1950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모델 'R타입 컨티넨탈'과 1956년 후속모델 ‘S1 컨티넨탈’을 내놓으며 벤틀리의 명성을 꾸준히 이어가는 행보를 보였다.
약 60년간 롤스로이스와 함께 성장하던 벤틀리는 1998년 폭스바겐그룹에 인수되면서 벤틀리의 색깔을 되찾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브랜드가 독일 브랜드로 인수됐다며 영국 대중들은 우려했지만, 오히려 벤틀리 100년 역사를 이룬 초석이 됐다.
폭스바겐그룹은 벤틀리를 완벽하게 '럭셔리 GT' 브랜드로 재구성했고, 적극적인 투자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벤틀리는 2006년 최고의 명차 '컨티넨탈 플라잉스퍼'와 '컨티넨탈 GT'를 내놓고 재기에 성공했다.
전동화 전환 시대를 맞은 지금은 전기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3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전기차'를 선보이겠단 것이다.
실제 애드리안 홀마크 벤틀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한국을 찾아 "벤틀리가 내놓을 전기차는 단순 전기차가 아니라 벤틀리다운 최고의 전기차"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벤틀리의 첫 전기차는 뮬리너 '바투르'의 디자인이 적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당초 2025년에 첫 전기차를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2026년으로 지연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홀마크 CEO는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첫 전기차는 1000마력 이상의 강력한 출력을 갖출 예정"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