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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0대 청년 노동자의 외로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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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 인턴기자
2022-10-24 16:15:15

사회 구조가 빚어낸 '필연적' 사고…SPC, 사고 이후 대처 방식에 아쉬운 점 많아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이번에도 필연적 비극이었다. 지난 15일 SPC그룹 계열 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생산 설비에 끼여 사망했다. 기업과 정부 할 것 없이 모두의 책임이었다.
 
기업은 안전에 무심했다. SPL공장의 안전 관리는 너무 허술했다. 사고가 발생한 생산 기계에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지난 2018년 태안발전소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씨가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뒤 제정된 '위험 작업 2인 1조'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평택 참변도 같은 근무 조 근로자는 다른 작업대에서 일하는 사이 혼자 작업하다 발생했다. 
 
기업은 노동자들을 위험한 작업장으로 내몰며 이윤을 추구했다. 노동자들의 시정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산 기계의 속도를 높였다. 팔아야 하는 물량에 맞추는 데만 급급했다. 지난 22일 SPC본사 항의시위 현장에서 만난 SPL 공장 노동자는 “2인 1조를 지키고 안전 설비를 갖추더라도 속도 앞엔 장사 없다”며 “작업 양이 많은 날은 안전이고 뭐고, 정신 없을 정도로 기계가 빨리 돌아간다"고 말했다.
 
정부는 잘못된 공장 운영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미 SPC그룹의 미흡한 안전 관리는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SPC그룹 계열사의 산업 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SPC그룹 내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 건수는 2017년 4건에서 2021년 147명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권고에 그쳤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SPL 평택공장은 지난해 5월 심사에서 ‘적합’ 판정과 함께 권고 9건, 관찰 5건 등의 지적을 받는 데 그쳤다. 권고는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 회사가 권고 사항을 이행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SPC그룹의 안전관리 문제가 심각했단 걸 생각하면 더 강력한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자체로 정부의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절감한 덕분인지 곳곳에서 재발 방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택공장 참변의 책임은 명백히 SPC그룹에 있다고 밝히며 강력한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시민사회는 ‘SPC그룹 불매운동’을 일으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더 확실하고 완벽한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실질적인 작업장 안전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2인 1조 지침 준수 강화와 함께 안전장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모든 장치가 기계의 속도 앞에는 무용지물"이란 현장 의견을 수용해 ‘생산설비 속도’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안전 실태 점검을 철저하게 진행해야 한다. 고용부는 24일부터 12월 2일까지 6주간, 식품 혼합기 등 유사 위험 기계·장비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 그런데 점검 대상에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5인 미만 사업장도 점검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이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현행법 상 5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야간 근로와 연장 근로에서 보호 받지 못한다. 이번 참사가 야간 근로 중 발생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세사업장의 안전 실태 점검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시민사회의 공론화 과정도 개선해야 한다.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과 뉴스포털에서 나타난 ‘SPC그룹 불매운동’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불매운동을 해야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불매운동 자체가 본질이 아니다. 사건의 이유와 목적에 주목해야 한다.

평소 기업과 국가가 안전 관리에 소홀했다는 사실이 불매운동을 유발했다. 불매운동 참가 여부를 넘어서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 비로소 긍정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불매운동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봐야 한다. 대학가엔 보기 힘들었던 대자보가 등장했다. 열에 아홉이 SPC그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언젠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청년을 연대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 좀 더 간절하게는 '안전한 일자리’다.  

태안에서 고 김용균씨가 스물네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을 때, 사람들은 지난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군(당시 19세)을 떠올리고는 '제2의 구의역 사건'으로 지칭하며 청년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가슴 아파했다. 이번에 사망한 SPL 평택 공장 노동자는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이었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청년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에 내몰리며 외로운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아무리 청년 취업이 어렵다지만, 이렇게 외롭고 고통스런 죽음을 감수하기에 스무살은 너무나 아프다.  모든 스무살들은 더욱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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