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ESG-외국에서 배운다

①견제·균형의 교과서, '스웨덴의 삼성' 발렌베리

문은주 기자입력 2022-01-04 07:06:38
상호 견제 속 능력자 중심 승계...2명 체제로 독단경영 차단 보유기업 전세계 100여개...스웨덴 사람 3명 중 1명 근무 재단 통해 학교병원 등 사회 환원...기초과학 연구도 투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항목으로 떠올랐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같은 재무지표로 기업을 평가하던 과거와는 달리 기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느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ESG 전담위원회를 만들고 사회공헌 부서를 확장하는 등 ESG 총력 태세에 나서고 있지만 ESG 평가에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 미국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필요한 ESG 경영 방식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좋은 기업으로 일컬어지는 외국 기업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발렌베리 가문 주요 계열사 [그래픽=김효곤 기자]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

유럽 최대, 최고 산업 왕조로 일컬어지는 스웨덴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이 내세우고 있는 가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만든 아스트라제네카, 종합가전기업 일렉트로룩스, 통신장비제조사 에릭슨 등이 대표적인 발렌베리 소유 기업이다. 160여년 간 경영 세습을 이어오고 있고 건설·항공 분야부터 가전·통신·제약 등 100여 개 글로벌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발렌베리 그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문 내에서 경영을 세습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비결은 'ESG 경영'이다.

◆스웨덴 경제 살리는 발렌베리...2명 체제로 독단 경영 차단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1856년부터 시작됐다. 해군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스웨덴 최초의 은행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발렌베리는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의 전신인 이 은행을 통해 국내 자산가와 외국의 투자금을 유치해 스웨덴 산업혁명의 불씨를 당겼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고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회사의 규모를 확장했다. 160여년간 몇 대에 걸쳐 경영권을 이어나갔다. 대표적인 가문 세습 방식이지만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세습 과정에 '견제'와 '균형'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통상 2명을 후계자로 지정한다. 각각 지주회사와 금융계열사 대표를 분담시키고 있으며 독단적인 경영을 방지하고 있다. 상호 견제하면서 능력을 인정 받는 방식으로, 후계자 평가에만 10년 이상이 걸린다. 미국이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고결정권자의 판단에 따라 특정인을 지정한 뒤 집중 교육하는 방식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후계자가 되려면 부모 도움 없이 학업과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하는 규정도 있다. 누구나 후계자가 될 수 있지만 다양한 경쟁 과정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1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의 모습(오른쪽 맨 위). 1대 발렌베리는 1856년 스웨덴 최초의 은행을 설립, 투자금을 유치해 스웨덴 공업화에 힘을 실었다. 이 은행은 훗날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으로 자리매김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이후 크고 작은 기업들에 투자·인수하면서 다수 기업을 보유하게 됐다. [사진 출처 : 발렌베리 재단 유튜브]


발렌베리 가문이 전 세계에 보유한 기업은 100여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에서 올리는 총생산 규모는 스웨덴 총생산의 30%를 넘는다. 스웨덴 노동자 3명 중 1명은 발렌베리 가문이 보유한 기업에서 일한다. 직접적인 경영은 발렌베리 가문 일원에 맡기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책임을 맡긴다. 가문의 일원은 가문이 보유한 재단을 통해서만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건강한 지배구조를 보이고 있다.

발렌베리는 한국 기업과도 인연이 있다. 2012년 발렌베리 가문 경영진이 삼성과 리움미술관을 다녀간 데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9년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과 만나 두 회사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인공지능(AI), 5G, 스마트시티에 관심을 갖고 있던 발렌베리 회장은 두 나라의 상호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콘니 욘슨 EQT파트너스 회장을 만났다. EQT파트너스는 발렌베리 가문이 세운 투자 전문 기업으로 2019년 스웨덴 스톡홀름 증시에 상장됐다. 두 회장은 그린 에너지, 헬스케어 등 미래 유망 분야 투자 관련 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받은 혜택만큼 베푼다"...스웨덴 '노블리스 오블리주' 상징

지금은 스웨덴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가문이지만 씻지 못한 흑역사도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이른바 '보쉬 스캔들'이다. 당시 스웨덴 정부와 발렌베리 가문은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문제는 발렌베리 가문이 독일 회사인 보쉬의 미국 자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독일과 미국 간의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미국 내 독일 자산이 전부 몰수됐지만 보쉬의 미국 자회사만은 발렌베리 가문의 소유가 됐기 때문에 이런 조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전쟁 이후 발렌베리가 보쉬에게 회사를 돌려주는 대신 보쉬는 거액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조항이 문제였다.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발렌베리 가문의 라울 발렌베리는 2차대전 당시 10만명의 유대인을 나치 대학살로 부터 막아냈다. 은행원이었던 그는 외교관에 지원하여 스웨덴 정부 건물 매입, 여권발행 등으로 3만3천여명의 유대인을 직접 구출했으며, 발렌베리 가문의 명성을 활용해 독일군 사령관을 압박하여 7만여명의 유대인 학살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라울 발렌베리는 구 소련군에 의해 미국 스파이로 오해를 받아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이같은 인권활동을 기리기 위해 스웨덴 룬드대학에 라울발렌베리의 이름을 딴 인권연구소를 세웠다. 스웨덴뿐 아니라 많은 유럽인들이 발렌베리 가문을 존경하는 이유다.  
 

발렌베리 가문의 5대 후계자. 왼쪽부터 야콥 발렌베리(지주회사격인 인베스터AB 운영), 마르쿠스 발렌베리(스톡홀름엔실다은행(SEB) 회장), 피터 발렌베리(발렌베리 재단 의장) [사진=발렌베리 재단 홈페이지]


발렌베리 가문은 가문만의 이익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기여에 집중하는 '선한 영향력'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스웨덴 국민에게 존경 받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대표적인 것이 재단을 통한 후원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다양한 세금 혜택을 받고 있다. 상속세를 내지 않고 있고 법인세는 실효법상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받은 이익을 발렌베리 가문은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따라서 스웨덴 국민들은 정부가 발렌베리 가문에 제공하는 세금혜택에 대해 불만이 없다. 

발렌베리 산하 기업에서 나온 배당금도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의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발렌베리 가문 소유의 재단으로 넘어간다. 대부분의 배당금 이익 역시 발렌베리 재단을 통해서 사회에 환원한다. 환원 규모는 전체 이익의 85%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학교와 병원, 해외 구호 활동 등에도 두루 활용한다. 발렌베리 재단이 유네스코와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국제 분쟁지역 난민과 어린이에게 집중 투자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기초과학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재단 후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집행하는데, 투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수천억 원의 배당금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및 학술 사업 발전 후원금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재단의 재무 상황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건전한 지배구조 외에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경영 방식으로도 발렌베리 가문은 주목 받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독특한 지배구조와 사회환원이 가능했던 건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권리를 존중하는 기업 문화가 발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웨덴판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을 잘 지키는 대표 기업인 셈이다. 

살트셰바덴은 스톡홀름 동쪽 외곽에 있는 도시로 당초 발렌베리 가문의 휴양지로 개발됐다. 1930년대 당시 스웨덴은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실업률이 급증하는 등 사회적인 혼란이 가속화되던 상황이었다. 스웨덴 정부는 오랫동안 노사정 대표자들과 함께 노동 관련 협상을 진행해왔다. 이후 마침내 살트셰바덴에 있는 그랜드호텔에서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 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에 합의한 것이다.

기업을 소유한 오너들은 보유주식을 상속-증여세 없이 재단에 출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이사회에 보내는 방식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이 협의문의 핵심이다.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는 만큼 노동자들의 복지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합의문에 담긴 △노동자들은 경영자들의 지배권을 보장할 것 △경영자들은 일자리 제공과 기술 투자에 힘쓸 것 △기업이익금의 85%를 사회보장에 환원할 것 등의 내용은 수백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이 가장 잘 실천하는 항목으로도 꼽힌다. 가장 오래된 'ESG의 표본'인 셈이다.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Knut and Alice Wallenberg Foundation)은 산하 기업의 배당금을 넘겨 받은 뒤 투자, 후원 등의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다. 환원 규모는 살트셰바덴 협약에 따라 전체 이익의 85%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는 학교와 병원, 해외 구호 활동 외에도 기초과학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데 사용한다. [사진=발렌베리 재단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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