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국내 자동차 시장을 휩쓸고 세단 중에서는 상위 차종인 준대형급이 시장을 압도해 중형 세단은 형님에 눌리고 동생에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2000만원 후반~3000만원 초충반대 중형 세단을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지난 5~8일 시승한 기아 '더 뉴 K5'는 중형 세단의 매력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 차였다. 결론부터 내놓자면 나흘간 약 1100㎞를 타면서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준중형인 K3와는 당연히 차원이 달랐고 한 체급 위인 K8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외관 변화보단 '내실'에 집중
시승 차량은 폭넓은 라인업 중에서도 2.0ℓ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었다. 변속기는 6단 자동이 들어갔다. 2000㏄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익숙하면서 다소 '올드(old)'한 조합이다. 유지비는 낮은데 출력은 더 좋은 1.6ℓ 가솔린 터보와 하이브리드 모델이 주인공 자리를 꿰찬 요즘 시대에 2000㏄ 중형 세단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신형 K5는 지난 2019년 출시된 3세대 모델에서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를 거친 차량이다. 겉에서 드러나는 변화는 크지 않다. 헤드램프(전조등)와 리어램프(후미등) 형상이 바뀌었고 인포테인먼트와 공조장치 조작부가 달라진 정도다.
전조등과 후미등은 선형을 유지하면서도 더 과감해졌다. 초기형에는 세련됐지만 다소 소극적인 길이로 머물렀다면 신형은 위와 아래로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덕분에 전면부는 한층 더 날렵해진 인상이다. 반면 후면부는 선을 쭉 하고 긋다가 멈출 타이밍을 놓쳤나 싶은 생각을 할 정도로 아래를 향해 곧게 뻗은 후미등이 눈에 띄었다. 실물을 측면 45도쯤에서 보면 볼륨이 느껴지기도 했다.
체감되는 공간감은 뒷좌석에 앉았을 때 크게 다가왔다. 몇 년 전 K8을 탔을 때 2열 공간이 운동장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못지 않았다. 엉덩이를 의자 앞으로 빼고 등을 뒤로 기대며 눕다시피 앉아도 앞좌석과 무릎 사이에 여유가 있었다. 재보진 않았지만 같은 플랫폼을 사용한 현대자동차 쏘나타보다도 넓은 느낌이다.
◆중형 세단을 새롭게 정의하다
신형 K5는 내·외관 변화보다 내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승차감과 정숙성이 상당히 개선됐다. 준중형차에서 중형으로 올라올 때 가장 많이 체감되는 부분이다. K5는 그 차이가 더 확연했다.
시내 주행 땐 엔진이 회전수를 서서히 높인다는 것 외에 다른 소리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110㎞로 달리는 동안에도 동승자와 편하게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실내로 유입되는 엔진·배기음, 노면 소음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가 전반적으로 잘 억제됐다. 속력 변화에 의해 소음이 발생하는 정도 역시 극적이지 않았다.
실제로 기아는 앞뒤 서스펜션 특성을 조율하고 소재를 개선했다. 또한 차체와 앞유리 접합부를 보강하고 뒷좌석에도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사용해 외부에서 전해지는 각종 소음과 불쾌감을 잡았다.
뛰어난 승차감과 정숙성은 2.0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과 만나 주행 질감을 잔잔하고도 온화하게 만들었다. 엔진 크기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이 유행하면서 어느덧 현대차·기아 중형 세단에도 1.6ℓ 가솔린 터보 엔진이 주력으로 자리 잡았는데, 매끄럽게 속력을 높이는 감각은 자연흡기 엔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일상 주행에서는 힘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주로 시내에서 내는 시속 60~70㎞까지는 제법 민첩하게 가속한다. 오르막에서나 시속 90~100㎞부터 엔진 소리가 커졌으나 이는 태생적 한계로 봐야 할 듯하다.
신형 K5는 퇴출 위기에 빠진 중형 세단을 새롭게 재정의하는 차였다. 점차 차를 보는 눈높이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준중형차와 등급 차이를 벌리고 대형차보다는 가격 접근성을 높이면서 존재감을 강화했다. 가격은 2.0 가솔린 기준 △프레스티지 2784만원 △노블레스 3135만원 △시그니처 3447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