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폭락에 산업 전반 타격 우려…디플레 신호탄?

 국제유가가 기록적인 폭락세를 나타내면서 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타격이 예상된다.

유가는 항공·해운·육상 교통 등 물류, 발전 등 에너지를 포함한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물가에도 중요 변수로 작용한다. 

당장 원유를 정제해 국내외에 판매하는 정유사들이 글로벌 수요 부진상황에서 재고량 증가, 판매 단가의 하락 등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고평가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됐다. 중동경제에 의존하는 해외 건설업 등의 타격이 예상되고 석유화학 업계도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원료가격 하락으로 비용이 줄어들 수 있으나 전반적인 부품 및 완제품 수요 감소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다른 한편으론 국제유가 급락이 휘발유·경유 등 기름값과 유류를 원재료로 쓰는 공산품 가격 하락 등의 원인으로 적용, 소비자 물가를 끌어내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가 불황 늪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국제유가의 큰 폭 하락은 본격적인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경제계에서 나오고 있다.         

9일 오전(한국시각) 런던선물거래소(ICE)에서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31.02달러까지 하락했다.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추가 감산합의 무산에 따른 것이다. 전일 대비 배럴당 14.25달러(31.5%) 급락한 것으로, 지난 1991년 걸프전 이후 약 30년 만의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27.34달러까지 낮아지며 30달러 선이 깨지기도 했다. 시장 일각에선 원유 가격의 배럴당 20달러대 시대 본격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국제유가가 폭락세를 보인 것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공급판매가격을 20% 이상 낮추고 원유 생산량을 하루 1000만배럴 이상으로 대폭 증산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앞서 사우디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유가가 하락세를 거듭하자 지난 6일 추가 감산을 제안했지만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합의가 무산됐다. 사우디가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원유 치킨게임'에 나선 것이다.

유가가 급락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산업은 단연 정유업이다. 통상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S-OIL(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가 보유한 원유 및 석유제품 재고는 도합 1억배럴 규모로 알려져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수입하는 두바이유가 올초 배럴당 69달러 수준에서 최근 40달러대로 낮아진 것을 감안하면 재고손실은 산술적으로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 달하게 된다. 매입 평균단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수치지만, 각 사별로 6000억원 내외의 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다.

유가 하락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불투명하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석유제품 가격이 하락해도 수요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수송용 휘발유·경유를 비롯해 선박연료유, 항공유 등 육·해·공 석유수요가 모두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유가가 급락한 만큼 재고평가손실이 불가피해 분기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기존에는 유가가 하락하면 석유제품 소비는 증가했지만,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산업 및 수송수요가 감소해 소비 증가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서 우려가 더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