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위기를 기회로] 한국기업, 3高 잊고 동남아·중동서 '새기회'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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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
2023-01-05 05:00:00

'뉴노멀'보다 걱정스러운 위기의 시대

동남아·중동, 새로운 '기회의 땅' 부상

노동력·자원 풍부하고 사업 가능성 커

脫중국·脫석유 추세, 韓기업 역할 주목

윤석열 대통령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지난달 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베트남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뉴 노멀(New Normal)에 전략을 수정하고 사업 다각화를 통해 적응해 왔다. 새로운 표준 내지는 새 기준으로 번역되는 뉴 노멀 정의는 간단치 않다. 저금리와 저성장은 어느새 '올드(Old) 노멀'이 됐고 고금리와 고물가,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 그 자리를 대신 꿰찼다. 기업에겐 끝을 알 수 없는 위기가 뉴 노멀보다 걱정스럽다.

국내 기업은 지난해 상반기(1~6월) 국제정세 불안과 공급망 붕괴 속에서도 사상 최고 실적을 냈지만 하반기(7~12월)는 전혀 달랐다. 전 세계적인 '3고(高)' 현상과 수요 침체는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지난 2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기업인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상투적인 말을 다시 한 번 꺼낼 때다. 현명한 투자가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법이 없고 혜안이 밝은 경영자는 위기 속에서 그 이후를 예비한다. 많은 기업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다.

최근 동남아시아와 중동이 '기회의 땅'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동남아는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울 뿐 아니라 노동력과 자원이 풍부해 오래 전부터 국내 기업 진출이 활발했다. 중동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 경제에 '중동 붐'이라는 전화위복을 선사한 지역으로 기억된다. 최근 동남아는 '포스트 차이나(중국 이후)'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중동에서는 제2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인구 10억 거대 경제권, 소비 시장으로 매력적

4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진행한 가장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동남아를 포함한 남아시아와 중동에 설립된 한국 기업의 해외 법인은 5869개에 달했다. 2012년 4097개에서 2014년 4156개, 2016년 5434개로 점차 늘어나다 5900개 수준에서 유지된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에서 누락된 법인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많다.

현지 법인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제조·무역업뿐 아니라 금융·운송·소매·서비스업까지 다양하다. 제조업이 3046개로 가장 많고 △도매·소매업 717개 △운수·창고업 339개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259개 △정보통신업 176개 △금융·보험업 160개 등이다.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금액을 권역별로 비교하면 동남아는 이미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만 놓고 봤을 때 17% 수준으로 중국(25%)에 못 미치고 북미(16%)를 약간 넘어선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중동은 4%로 아직 미미한 편이다.

동남아에서 인도를 거쳐 중동까지 이어보면 거대한 경제 벨트가 만들어진다. 이들 지역 인구만 해도 동남아 6억7000만명, 인도 14억2000만명, 터키와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4억명 등이다. 모두 합하면 25억명, 인도를 빼더라도 10억명이 넘는 규모다. 소비 시장으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동남아에서는 온라인 소비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포레스터 리서치에 따르면 1인당 온라인 소비 지출액은 2019년 135달러(약 17만2000원)에서 2021년 381달러(48만6000원)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오는 2026년에는 671달러(85만6000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이 빠르게 늘고 인구 대다수가 20대에서 40대인 덕분이다.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와 미용 제품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간편식과 영양제 등으로 확대됐다. 동남아 소비자들은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에 빠르게 적응하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한다. 또한 브랜드 충성도가 높고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류가 가장 대중화된 지역이라는 점도 한국 기업에는 이점이다.

이러한 추세는 중동에서도 젊은 연령층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전자결제와 온라인 구매가 활성화되는 한편 K-팝과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중동은 정치·문화적으로 폐쇄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완화로 디지털 중심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동남아, 미·중 갈등 속 중국 대체할 투자처 부상

과거 국내 기업이 동남아에 투자하는 가장 큰 유인은 저렴한 인건비였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국내 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동남아로 생산 시설을 옮겼다. 특히 노동력에 주로 의존하는 섬유, 의류, 가전제품 제조업의 동남아 진출이 활발했다.

최근에는 동남아를 단순히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지역으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동남아는 아시아권 국가들 중에서도 지난 10년 간 최저임금을 가장 가파르게 인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연 평균 최저임금 상승률은 라오스 26.8%, 캄보디아 20.4%, 베트남 18.9%나 된다. 최근 5년 동안에는 5~9% 수준을 보였는데 아시아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한다.

동남아는 베트남을 필두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1995년 TV 조립 공장을 설립하며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는데 2010년 이후로는 전자 부품과 스마트폰으로 품목을 확대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베트남 타이응우옌성 북부 지역에서 반도체 부품을 생산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베트남 정부도 세제 혜택 등 지원을 통해 첨단 산업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태국은 산업 구조개편 정책인 '태국 4.0'을 추진하며 미래 산업 육성에 나섰다. 외자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자동차와 전기·전자제품 생산 기지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다. 태국 정부는 동남아 내 전기자동차 생산 허브를 목표로 오는 2030년까지 총 3단계에 걸친 로드맵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동남아가 중국을 대체할 투자처로 부상한 점이 고무적이다.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주요 기업은 한·중이 수교한 1992년 이후 중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했으나 2017년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계기로 한한령(限韓令)이 확산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기에 미국·중국 간 갈등이 더해져 상당수 기업이 사업 축소 또는 철수를 검토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우디 비전 2030' 계획 중 하나로 추진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더라인' 사업 조감도[사진=네옴시티 웹사이트]


◆'오일머니의 종말' 예고된 중동, 산업 재편은 韓에 기회

중동은 원자력 발전과 건설, 교통, ICT 분야에서 새로운 붐을 예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국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석유를 팔아 경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지구 전체 문제로 대두하면서 석유 중심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커졌다. 중동이 직면한 최대 과제는 산업 구조 다변화다.

중동은 이른바 '탈(脫)석유' 행보에 나섰다. 사우디는 제조업을 육성하고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을 65%로 키우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UAE는 지속 가능성 확보를 목표로 도시국가마다 '아부다비 경제 비전 2030'과 같은 경제 개발 계획을 가동했다. 오만과 카타르, 이집트, 쿠웨이트, 튀르키예 등 나머지 중동 권역 국가도 제조업 확대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상태다.

중동이 주목한 분야는 한국 기업이 강점을 지닌 산업들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해 말 방한 당시 20건이 넘는 계약과 양해각서(MOU)가 양국 정부·기업 사이에 체결되며 가능성을 증명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만 하루 남짓 국내에 머무르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 8명을 한 번에 만났다.

여러 산업 가운데서도 원전 업계가 중동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직전에 놓인 원전 산업은 중동에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선언한 UAE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은 바라카 원전 등 신규 건설 프로젝트와 정비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한편 복잡한 종교·정치 지형과 문화적 이질성은 불안 요소로 꼽힌다.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는 러시아·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은 러·중과 대립각을 세우며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다. 중동 내부에 빈번한 이슬람 종파 간 갈등도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정세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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