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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공로자’ 장바이파 전 베이징 부시장 별세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호민 기자
2019-07-07 16:04:23

“1984년부터 한국 방문 후 관계 확립”

“한국기업 진출 적극적으로 도와”

장바이파 베이징시 전 부시장[사진=바이두 캡처]

한중 수교의 핵심역할을 한 장바이파(張百發) 베이징시 전 부시장이 세상을 떠났다.

7일 중국 신경보 등에 따르면 장바이파 전 부시장이 지난 5일 새벽 베이징시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베이징시 건공국 부국장, 국가건위 부국장, 부주임을 역임했으며, 1983년 3월부터 1997년 9월까지 베이징시 인민정부 부시장을 지냈다.

허베이성(河北省) 샹허(香河) 출신인 장바이파 부시장은 1948년 부친과 함께 베이징으로 왔다. 철근을 가공하는 견습공을 시작으로 베이징 제3건축공사에서 청년돌파대 대장, 당 부서기 등을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54년 공산당에 입당한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베이징시 건축공정국 부국장, 국가건축위원회 부국장 역임한 이후 베이징 부시장이 됐다.

1992년 한중 수교를 공식화한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한중 관계를 발전시킨 핵심인사로 평가되는 중국 내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인사다.

장바이파 전 부시장과 한국의 인연은 한중 수교 전인 1984년부터다. 1984년 9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대표자회가 서울에서 개최됐을 때 장바이파 부시장은 당시 올림픽위원회 위원이었던 하진량 위원 등과 함께 방한했다.

장바이파 부시장은 당시 “방한을 계기로 한국의 올림픽 준비 경험을 많이 배우고 회원국 관계자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베이징은 1990년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장바이파 부시장은 방한을 계기로 한국 정계와 체육계 인사들과 여러 차례 접촉하며 중국 내에서 한국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6년부터 2년간 체육부 장관을 역임한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장바이파 전 부시장이 한국과 중국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이세기 전 장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1980년대부터 한국을 방문했다”며 “중국의 대표적 한국통으로 한중관계의 발전과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도운 친구”라고 밝히기도 했다.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1992년 8월24일 한중 수교에 핵심역할을 했다.

장바이파 당시 베이징 부시장은 수교 직후 베이징 시청에 태극기를 처음 게양하고 21세기 한중교류협회 김한규 회장을 초청했다. 김한규 회장은 초청 당시 베이징시 측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 정관계 인사, 건설 관련 기업과 교류협력을 이어갔다. 장바이파 전 부시장은 1993년 2월 한중 수교 이후 최대 규모인 106명의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방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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