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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 ②】 중국은 '국가'가 아니라 '문명'
[이코노믹데일리]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중국을 서구식 ‘국가’의 틀로만 바라본다. 영토가 있고, 국민이 있고, 정부가 있는 보통의 근대 국민국가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 관점으로 중국을 분석하는 순간부터 거의 모든 해석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중국은 한국이나 서구 국가들과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스스로를 하나의 국가 이전에 ‘문명’으로 인식해 온 집합체다.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화문명(中华文明)’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역사 용어가 아니다. 이는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국가 운영 철학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중국은 자신들을 특정 시점에 탄생한 근대 국가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문명의 연속선 위에 놓인 존재로 인식한다. 이 문명 인식이 중국의 정치, 외교, 영토, 역사 정책 전반을 규정한다. 한국은 비교적 명확한 국가 형성 과정을 거쳤다. 민족과 언어, 영토가 비교적 일치하며 근대 국가의 틀 속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반면 중국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중국은 다민족, 다언어, 다지역 사회다. 현재 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민족만 56개에 이르며 생활 방식과 문화, 사고방식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이질적인 집단이 하나의 정치 체계로 유지되는 이유는 ‘중국 문명’이라는 상위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국경은 단순한 법적 선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공간, 문화적으로 연결됐다고 믿는 지역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중국이 영토 문제에서 국제법보다 역사 서사를 앞세우는 이유다. 대만, 티베트, 신장, 홍콩 문제를 중국이 일관되게 ‘내정 문제’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이 지역들은 독립된 정치 단위가 아니라 문명 질서의 일부다. 이런 문명 인식은 중국의 집착과 강경함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중국은 사소한 문제에도 과잉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내부 논리에서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문명의 연속성과 통합이 위협받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적 손해나 국제적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이 원칙에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문명국가로서의 중국은 시간 개념에서도 다르다. 서구 국가들이 단기 성과와 선거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면 중국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단위의 시간을 전제로 정책을 설계한다. 오늘의 손해가 내일의 통합과 안정을 보장한다면 감수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정책은 느려 보이지만 방향성은 놀라울 만큼 일관된다. 한국 사회가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국가 감정’을 중국에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가에 대한 감정과 정부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분리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국가, 문명, 정권이 강하게 결합돼 있다. 중국인 다수에게 중국 공산당은 단순한 정치 조직이 아니라 문명을 관리하는 주체로 인식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내부 여론을 오독하게 된다. 중국의 역사 인식 역시 문명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게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다. 과거에 속했던 지역과 민족을 현재의 중국 문명 안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은 단순한 역사 해석이 아니라 정치 행위다.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논쟁이 학술을 넘어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종종 역사 왜곡이나 제국주의적 발상으로만 규정한다. 물론 비판할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비판과 이해는 구분돼야 한다. 중국이 왜 그토록 역사와 영토 문제에 집착하는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응은 감정적 반발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감정적 대응은 중국의 문명 논리를 흔들지 못한다. 문명국가로서의 중국은 대외 관계에서도 독특한 태도를 보인다. 중국은 주변 국가를 대등한 파트너로 보기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질서 속에서 위치를 설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현대 국제 질서와 충돌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중국은 평등한 국가 간 관계보다는 위계적 질서를 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인식은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한국을 감정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보다 전략적 가치와 문명 질서 속 위치로 판단한다. 한국이 중국의 핵심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을 때는 우호적이지만 문명 통합이나 체제 안정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면 단호해진다. 한국이 느끼는 ‘온도 차’는 여기서 비롯된다. 중국을 문명국가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한 이해는 현실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중국이 어떤 선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지 어떤 영역에서는 타협이 가능한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외교와 경제, 안보 전략 수립에 필수적인 전제다. 중국을 서구식 국가로만 바라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놀라고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을 문명국가로 이해하면 놀라움은 줄어들고 예측 가능성은 높아진다. 예측 가능성은 전략의 출발점이다. 중국을 아는 것이 곧 중국에 끌려다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아는 것이야말로 중국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자신을 문명으로 규정하며 움직일 것이다. 이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감정과 이념을 앞세워 중국을 단순화할 것인가 아니면 구조와 논리로 중국을 이해할 것인가. 중국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중국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판단력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중국은 국가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문명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의 대상도 무시해도 되는 이웃도 아니다. 분석 가능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분석 가능한 대상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2026-01-02 1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