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8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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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의 초점은 김건희가 아니다…국정 신뢰 흔든 결정 구조 규명이 관건
[이코노믹데일리] 비상계엄 사태가 일단락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당시 국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둘러싼 의문은 오히려 더 짙어지고 있다. 최근 김건희 여사의 수사 개입 의혹이 구체적 정황과 함께 다시 드러나면서, 그 시기 대통령실·법무부·검찰 간 권력의 흐름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파헤치는 작업이 특검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김 여사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보낸 메시지와 검찰 수사팀 관련 ‘지라시’를 전달한 사실이 내란특검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명품백·주가조작 등 본인 관련 수사가 시작된 직후였다. 같은 시기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박 전 장관과 여러 차례 통화했고, 검찰 지휘부는 하루 사이에 크게 교체됐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누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로 향한다. 조은석 내란특검팀은 김 여사·윤 전 대통령·박 전 장관을 하나의 결정축으로 보고, 이 축이 사법리스크 관리를 위해 움직였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 전 장관에게 이미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만큼, 특검의 다음 칼끝은 김 여사에게 향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건희특검은 직권남용 공범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문제는 김 여사가 공무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의 권한 행사에 김 여사가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가 입증돼야 한다. 과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서원씨가 직권남용 공범으로 처벌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법원은 “사적 이해가 권력의 공식적 결정 과정에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도 결국 동일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김 여사의 메시지 전달이나 문의가 단순한 의견 개진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수사 지휘라인의 실제 판단에 개입한 것인지다. 검찰 인사 직전 윤 전 대통령과 박 전 장관의 잦은 통화 기록, 주가조작 의혹 불기소 발표 직전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는 모두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다. 따라서 이번 특검의 목표는 김건희 여사 개인의 비위 여부를 밝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난 정권의 의사결정 구조가 공적 기준에 따라 작동했는지, 국가 시스템이 사적 이해에 흔들린 적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정 신뢰 회복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문제다. 특검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은 또 다른 변수다. 활동 기한은 다음 달 28일까지로, 불과 몇 주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 김 여사의 소환 조사는 4일과 11일, 윤 전 대통령은 17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공범 구조가 부분적으로라도 확인된다면, 수사 방해·직무유기 등 김건희특검법이 규정한 사건들의 윤곽이 달라질 수 있다. 특검이 규명해야 할 것은 결국 “어디까지가 정무 판단이고, 어디서부터가 사적 개입이었는가”라는 질문이다. 국정 신뢰는 투명한 절차에서 나온다. 당시의 결정 과정이 그 기준을 충족했는지는 이제 특검이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몫이다.
2025-12-01 08: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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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0만명 개인정보 노출…쿠팡·정부 모두 '감독 공백' 드러났다
[이코노믹데일리]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쿠팡에서 3370만명에 달하는 고객 개인정보가 외부로 노출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기업의 보안 체계뿐 아니라 정부의 관리·감독 시스템 전반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보 유출 시점이 지난 6월로 추정되는데도 5개월 동안 사고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전자상거래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5일 쿠팡이 제출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쿠팡은 처음 4500개 계정의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파악했으나, 추가 조사에서 총 3370만개 계정이 무단 접근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정보가 포함돼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기업의 ‘사고 인지’ 실패가 핵심 법조계에서는 쿠팡이 개인정보보호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적절히 이행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본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기업이 개인정보 침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는 침해사고 심각도에 따라 주기적인 위험 분석과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출이 수개월간 이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이번 사고는 기본적인 침해 탐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정보보호 전문가는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이라면 비정상적 접근을 즉시 탐지하는 것이 기본인데, 장기간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관리적 통제가 사실상 부재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은 침해 사고 인지 시 지체 없이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 18일 침해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유출 시점과의 괴리가 커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 정부 감독도 ‘사후 대응’에 치우쳐 이번 사태는 정부의 감독 체계에도 질문을 던진다.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속히 확대됐음에도, 주요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기 점검이나 위험 기반 검사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규모 개인정보를 보유한 기업에 대한 안전성 평가가 주로 기업의 자체 보고에 의존하는 구조 역시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뒤늦게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사고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사고 경위와 내부 통제 체계를 면밀히 살펴 보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인지 이전의 예방적 감독이 얼마나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 피해 확산 우려…“생활 정보 유출의 위험 더 커” 피해자들은 실질적 위험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배송지 정보와 주소록이 포함된 만큼 2차 피해 가능성이 높고, 공동현관 비밀번호 등 생활 패턴이 노출됐을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신용카드 정보보다 일상 정보가 유출될 경우 오히려 범죄 악용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고는 2011년 싸이월드·네이트 정보 유출과 규모는 비슷하지만, 내부 직원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관리 책임은 더 무겁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 내부 관리 체계를 점검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 제도 개선 필요성…“대형 플랫폼은 사실상 공공 인프라 수준 규제가 필요”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단순 민간 기업이 아닌 사실상 국가 기반 인프라 수준으로 분류해 보다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형 플랫폼이 보유한 정보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기존의 ‘자율 규제 중심’ 모델로는 보안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정보보안 전문가는 “시장 규모와 영향력 측면에서 쿠팡 같은 기업은 전력·통신망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상시적 위험 평가와 정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쿠팡의 대응뿐 아니라 정부의 감독 체계를 함께 점검하는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술적 개선과 법적 규제 강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2025-11-30 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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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 확인…5개월간 '몰라', 정부 합동조사 착수
[이코노믹데일리]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 쿠팡에서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다. 유출된 계정 수만 3370만개에 달하며 해킹 시도가 시작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이를 인지한 것으로 드러나 기업의 보안 관제 능력과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30일 IT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전날(29일) 공지를 통해 "고객 계정 약 3370만개가 무단으로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쿠팡이 지난 20일 당국에 최초 신고했던 4500여 개보다 무려 7500배나 늘어난 수치다. 쿠팡의 지난 3분기 활성 고객 수(2470만명)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로 현재 이용 중인 고객은 물론 휴면 계정이나 탈퇴 회원의 정보까지 사실상 전 국민의 데이터가 털린 '보안 참사'다. ◆ 5개월간 제집 드나들듯…구멍 뚫린 '로켓 보안'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늑장 인지'다. 쿠팡과 정부의 1차 조사 결과 해커들은 이미 지난 6월 24일부터 해외 서버를 우회해 쿠팡 내부망에 접근한 것으로 추정된다. 쿠팡이 이를 처음 인지한 시점은 11월 18일로, 무려 5개월 가까이 고객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기술 기업'을 자처하던 쿠팡의 보안 시스템이 반년 가까이 무력화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업계에서는 "기본적인 이상 징후 탐지 시스템(IDS)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내부 모니터링 인력이 이를 간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휴대전화 번호, 배송지 주소 등이다. 쿠팡 측은 "결제 정보나 비밀번호 등 민감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며 "무단 접근 경로를 차단하고 내부 모니터링을 강화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이번 일로 발생한 모든 우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수사기관 및 규제 당국과 협력해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 "현관 비번은 안전한가?"…안일한 해명이 키운 공포 쿠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특히 '배송지 주소' 유출은 단순한 스팸 문자를 넘어 오프라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쿠팡의 핵심 서비스인 '로켓배송' 특성상 대다수 고객이 '공동현관 비밀번호'나 '자택 현관 비밀번호'를 배송 요청 사항에 기입해 두기 때문이다. 맘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다 털렸는데 결제 정보만 안전하면 끝이냐", "현관 비밀번호까지 넘어갔을까 봐 두렵다"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쿠팡은 이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 "민감 정보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고객이 느끼는 실질적인 공포를 외면한 기계적인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가 직접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30일부터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사고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역시 지난 25일 수사에 돌입했다. 핵심 쟁점은 쿠팡이 개인정보보호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다. 법조계에서는 대규모 집단소송이 예고되고 있다. 김경호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유출 규모가 3700만명으로 전 국민에 육박하고 주소 정보는 스토킹 등 오프라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쿠팡의 과실이 인정될 경우 10만 원 중반대 이상의 손해배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네이버 카페 등에는 피해자 모임이 결성돼 가입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쿠팡의 위기 관리 능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최초 신고 당시 피해 규모를 4,500명 수준으로 축소하려다 조사가 본격화되자 9일 만에 3,370만 명으로 정정한 행태는 기업의 도덕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롯데카드나 KT 등 과거 대형 보안 사고 때마다 반복됐던 ‘간 보기식’ 공지가 쿠팡에서도 재현된 셈이다. 한편 쿠팡은 그동안 택배 노동자 과로사, 블랙리스트 의혹, 입점 업체 수수료 갑질 등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여기에 고객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정보 보호’마저 뚫리면서 스스로 자부하던 ‘혁신 기업’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번 사고는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본질은 미국 법인(Coupang, Inc.)인 쿠팡이 과연 한국 시장에서 그 거대한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2025-11-30 11: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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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족 해결 나섰지만… 절차 흔들린 '의대 정원 확대'
[이코노믹데일리] 대한민국 의료 인력 수급의 오래된 균열이 또다시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해 감사원이 절차적 미비를 지적했지만, 이번 감사는 ‘의사 부족’이라는 구조적 병목과 정책 추진 과정의 간극이 동시에 드러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2월 국회의 요구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대통령실의 의대 정원 조정 절차를 점검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복지부가 활용한 ‘2035년 부족 의사 수 추계’는 수치의 정합성이 부족했고, 의료현안협의체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의 논의 과정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원 확대의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지역 의료 공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원 확대 논의는 되풀이돼 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연간 400명씩 10년간 4000명 증원을 추진한 바 있다. 의사 수급 불균형은 정권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의료 시스템 전반의 누적된 과제였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정원 확대 검토를 시작했지만, 규모 산정과 정책 조율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감사에서 확인됐다. 초기 제안은 연간 500명이었다. 조규홍 전 복지부 장관이 2023년 6월 보고한 안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산출 근거가 아닌 기존 정책과의 단순 비교에서 출발한 숫자로 드러났다. 이후 대통령실은 필수의료 공백을 감안해 “1000명 이상” 증원을 주문했고, 여러 시나리오가 동시에 논의되면서 규모가 빠르게 바뀌었다. 연간 1000명, 1942명, 나아가 2000명 증원안까지 검토되는 과정에서 정책 라인의 조율 부재가 그대로 노출됐다. 교육부도 대학별 교육 여건 평가에서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구성에서 교육 역량을 평가할 인력이 균형 있게 포함되지 않았고, 대학별 정원 배정 기준도 일관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원 확대라는 큰 틀의 방향성보다 행정적 준비 부족이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 셈이다. 결정적 쟁점은 지난해 2월 보정심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연 2000명 증원안이 처음으로 공식 심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회의 이전부터 복지부는 언론 브리핑을 공지한 상태였고, 보정심 내부에서는 충분한 토론도 이뤄지지 않았다. 감사원이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유다. 의사단체의 반발, 지역 의대 신설 문제, 대학별 수용 능력 등 복합적 요인이 얽힌 상황에서 정부 부처 간 조율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은 복지부에 “추계의 문제점을 반영해 정원 조정 절차를 보완하라”고 통보했고, 교육부에는 “대학별 정원 배정을 엄정하게 심사하라”고 주의를 요구했다. 결국 이번 감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의사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그 해결 과정에서 행정 절차는 한층 더 투명하고 정밀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원 확대 방향성은 이미 사회적 공감대를 얻은 만큼, 앞으로는 데이터와 절차가 뒷받침되는 정책 설계가 의료정책의 신뢰를 좌우할 전망이다.
2025-11-27 14: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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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준공'의 배신… 1500억 적자 늪에 빠진 신탁사들, '줄소송' 공포 덮쳤다
[이코노믹데일리] 부동산 호황기 시절, 금융계열 신탁사들의 외형 성장을 견인했던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책임준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미분양 사태로 시공사가 쓰러지자 그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은 신탁사들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법원이 책임준공 의무를 엄격하게 해석해 신탁사에 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업계에서는 "4분기 이후가 진짜 지옥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마이너스의 손' 전락한 신탁사… 3분기 누적 손실만 1530억 26일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국내 14개 부동산신탁사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총 15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신탁업계가 이처럼 대규모 동반 적자를 기록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금융지주 계열사들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자산신탁은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이 1846 원에 달해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70억 원 흑자였던 회사가 불과 1년 만에 회복 불능 수준의 적자 수렁에 빠진 셈이다. 이외에도 교보자산신탁(-714억원), KB부동산신탁(-292억원) 등 주요 회사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했고, 무궁화신탁(-216억원)과 코리아신탁(-139억원)도 적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 같은 실적 쇼크의 근본 원인은 단연 '책임준공'이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부도 등으로 기한 내 건물을 짓지 못하면 신탁사가 대신 건물을 완공하거나, 손해를 배상하겠다고 대주단에 확약하는 상품이다. 2022년 이후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체력이 약한 중소 건설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이들이 시공하던 지방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현장의 부실이 고스란히 신탁사로 전이된 것이다. ◆ 법원, 신탁사에 "기한 못 맞추면 원리금 다 물어내라"… 소송 리스크 현실화 단순한 실적 악화보다 더 큰 문제는 4분기 이후 예고된 '법적 리스크'다. 최근 법원은 책임준공 약정을 지키지 못한 신탁사에게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PF 대주단이 신한자산신탁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신탁사는 575억원과 지연손해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5월 평택 어연리 물류센터 소송(256억 원 배상 판결)에 이은 연이은 패소다. 법조계와 건설업계는 이를 두고 "사실상 신탁사가 PF 대출의 연대보증인 역할을 하라는 판결"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건물을 어떻게든 완공하면 책임을 다한 것으로 봤지만, 최근 판결은 기한을 하루라도 넘기면 PF 대출 원금과 연체이자까지 모두 물어내라는 식"이라며 "이런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 신탁사부터 줄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제 살 깎아먹기… 신탁계정대 8.8조 육박, M&A 시장도 '찬물' 신탁사들의 유동성도 급격히 말라가고 있다.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을 위해 고유계정(자기자본)에서 빌려준 돈인 '신탁계정대' 총액은 3분기 기준 8조8355억원으로, 작년 말(7조7016억원) 대비 1조 원 넘게 급증했다. 사업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아 신탁사가 제 돈을 태워 막고 있다는 뜻으로, 이는 잠재적 부실 덩어리다. 이러한 부실 리스크는 M&A(인수합병)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당국의 경영개선명령을 받고 매물로 나온 무궁화신탁의 경우, 일부 원매자가 관심을 보였으나 숨겨진 '우발 채무'(소송 리스크) 탓에 발을 빼는 분위기다. 재무제표에 당장 잡히지 않는 수백, 수천억 원대의 소송 패소 비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호황기에 리스크 관리 없이 수수료 따먹기식 영업에만 몰두했던 신탁사들의 '안전불감증'이 결국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책임준공발 소송전이 본격화될 경우, 국내 부동산 PF 시장은 또 한 번 거대한 구조조정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2025-11-26 07: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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