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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중형에 드러난 법원 판단… 윤석열 내란 1심 향방
[이코노믹데일리]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사법부가 처음으로 ‘내란’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중형이 선고되면서, 계엄 선포의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 책임이 어디까지 인정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21일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직 국무총리가 형사재판에서 선고와 동시에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형량 그 자체보다 사건의 성격 규정에 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령이 “형법 제87조가 규정한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12·3 비상계엄을 사법적으로 ‘내란’으로 판단한 첫 사례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와 동시에 공개된 포고령에 대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의회 민주주의, 영장주의, 언론·출판의 자유 등 헌법 질서를 소멸시키려는 목적에서 발령됐다”며 국헌 문란의 목적을 인정했다. 군 병력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하고 출입을 통제한 행위에 대해서도 “다수인이 결합해 위력을 행사한 폭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2·3 계엄의 성격에 대해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해 위로부터 실행된 내란”으로 규정하며 “친위 쿠데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계엄이 짧은 시간 안에 종료되고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민과 일부 정치인, 위법한 지시에 저항한 군인과 경찰의 대응 때문”이라며 “내란 성립이나 형을 정하는 데 고려할 사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 전 총리에 대해서는 국정의 2인자로서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남용을 견제하고 불법 계엄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방기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은닉하고, 계엄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폐기했으며, 헌법재판소에서 위증한 점을 중형 사유로 들었다. 특검의 구형량은 징역 15년이었으나 재판부는 이를 상회하는 형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특검이 처음 적용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에 대해서는 범죄로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으로 역할별 구성요건이 정해진 필요적 공범 범죄로 일반적인 방조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는 방조범이 아닌 내란 중요임무종사 정범으로 처벌됐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유죄 판단이 내려지면서, 계엄 선포의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 책임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판결은 12·3 비상계엄을 형법 제87조의 내란으로 규정하고, 그 성립 요건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원의 시각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놓고 보면, 윤 전 대통령 사건은 세 갈래 판단 가능성 위에 놓여 있다. 먼저 내란 우두머리에 대해 예정된 법정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원칙적 형이다. 재판부가 12·3 계엄을 ‘내란’이자 ‘친위 쿠데타’로 규정한 판단을 그대로 대입할 경우, 계엄 선포의 직접 주체에 대해서도 이 형의 범위가 문제 된다. 특검이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다음은 법정형 범위 안에서 양형을 달리하는 판단이다.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계엄이 단기간에 종료된 점이 양형 단계에서 어떻게 반영될지가 쟁점이 된다. 다만 한 전 총리 판결에서 재판부는 계엄이 조기에 종료된 사정을 내란 가담자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판단이 유지될 경우, 유기징역을 선택하더라도 장기간 실형이 문제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내란 우두머리로서의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이 통치행위의 범주에 속하고, 군과 경찰의 폭동 실행에 대해 직접적인 지휘·통제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 전 총리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종사를 인정한 이번 판결은, 계엄 선포의 직접 주체인 대통령의 책임을 그보다 좁게 설정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판단 방식은 과거 판례에서도 반복돼 왔다.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대해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내란 혐의를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국헌 문란의 목적과 군을 동원한 폭동 여부를 판단의 중심에 두었다. 이번 한 전 총리 판결 역시 포고령의 목적과 국회·중앙선관위 점거 등 군·경 동원 행위를 판단의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기일은 2월 19일로 예정돼 있다. 이 재판은 한 전 총리 판결에서 드러난 법원의 판단 기준이 계엄 선포의 최종 결정권자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가르는 절차가 된다.
2026-01-21 17: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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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개인이 짓지만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국가가 무너질 때는 전차가 아니라 말과 명령이 먼저 무너진다. 헌정 질서를 지탱하는 것은 군홧발이 아니라 절차이고,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이며, 정권의 승리가 아니라 법치의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을 가장 높은 자리에서 먼저 훼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죄는 형법 조문을 넘어 역사에 남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고 ‘역사의 죄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감정의 욕설이 아니라 국민 공동체가 공유해온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의 언어로 내리는 엄정한 정치적·도덕적 평가다. 윤 전 대통령은 공수처 체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판단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나 우발적 저항이 아니었다. 공권력의 집행을 힘으로 가로막고, 국가 시스템을 사유화하려 한 행위가 법치에 남긴 구조적 상처였다. 이 한 건만으로도 결론은 충분하다.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법의 집행’을 정면에서 거부하거나 지연시키고, 제도를 자신의 방패로 삼는 순간 법치국가의 근간은 흔들린다. 그것은 한 개인의 범죄를 넘어 공동체가 합의해온 규범과 신뢰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죄의 무게가 다르다. 더 큰 문제는 이 첫 선고가 ‘예고편’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내달 19일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해당 사건은 이미 결심을 마쳤고 특검은 사형을 구형한 것으로 보도됐다. 사법 절차의 결과와 무관하게 이 사안이 헌정 질서에 던진 충격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판결문이 나오기 전까지 법률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역사적 책임의 영역은 다르다. 민주주의에서 지도자는 ‘법정 유죄’ 이전에도 ‘공적 신뢰’에 의해 심판받는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헌정의 뿌리를 흔들었다는 의혹만으로도 지도자는 이미 공동체 앞에 씻기 어려운 책임을 진다. 윤 전 대통령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 착오나 국정 운영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이 통제 장치를 무력화하고 절차를 무시하는 순간 국가는 ‘법의 국가’가 아니라 ‘사람의 국가’로 전락한다. 법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를 묶어두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권력자가 법을 비틀고 제도를 우회하며 국가 장치를 사병처럼 다루려 했다면, 그때부터 역사적 죄는 시작된다. 지도자의 일탈은 개인의 타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를 왜곡하고 수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으며 결국 국민 사이에 공유된 규칙 자체를 붕괴시킨다. “어차피 힘 있는 사람은 빠져나간다”는 냉소가 확산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이 사태가 남긴 상처는 개인의 명예나 정치적 진영의 승패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상식의 국가’라는 토대 자체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한 산업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권력이 절차를 경시하고 물리력과 지시로 제도를 눌러버리는 순간 우리는 가장 낡은 개발도상국적 권력 습성의 어둠으로 되돌아간다. 그 후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합리화하는 순간 더 큰 재앙은 예외 없이 반복된다. 역사는 늘 그렇게 경고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첫째, 재판은 재판대로 끝까지 원칙주의를 지켜야 한다. 여론의 속도나 정치적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법률과 증거, 절차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헌정의 복원이다. 둘째,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사태를 진영 논리로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편이면 괜찮고 상대편이면 악”이라는 언어는 민주주의를 다시 찢는다. 법치를 지키는 일은 어느 편의 승리가 아니라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윤석열을 ‘역사의 죄인’이라 부르는 것은 특정 인물을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권력이 헌정 위에 서지 못하도록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해서다. 우리는 법을, 절차를, 상식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자 내일의 안전장치다. 죄는 개인이 짓지만, 그 대가는 언제나 국민이 치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묻고 반드시 기록하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정의 판결이 어떤 결론에 이르든 역사 앞에서의 책임은 이미 시작됐다.
2026-01-18 15: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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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원칙·상식의 법대 위에서, 윤석열은 '역사의 죄인'이다
국가가 무너질 때는 전차가 아니라 말과 명령이 먼저 무너진다. 헌정 질서를 지탱하는 것은 군홧발이 아니라 절차이고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이며, 정권의 승리가 아니라 법치의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을 가장 높은 자리에서 먼저 훼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형법 조문을 넘어 역사에 남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고 ‘역사의 죄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감정의 욕설이 아니다. 국민 공동체가 오랫동안 공유해 온 기본과 원칙, 상식의 언어로 내리는 정치적·도덕적 평가다. 윤 전 대통령은 공수처 체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판단한 것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었다. 공권력의 집행을 물리력으로 가로막고 국가 시스템을 개인의 방패처럼 사유화하려 한 행위가 법치에 남긴 상처였다. 이 한 건만으로도 결론은 충분하다.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법의 집행을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지연시키고 제도를 자신의 방어막으로 삼는 순간 법치국가의 근간은 흔들린다. 그것은 개인의 범죄를 넘어 공동체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그래서 그 죄는 무겁다. 더 큰 문제는 이 첫 선고가 ‘예고편’에 가깝다는 점이다. 내달 19일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미 결심 공판은 마무리됐고 특검은 사형을 구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우리는 판결문이 나오기 전까지 법률적으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역사적 책임의 영역은 다르다. 민주주의에서 지도자는 ‘법정 유죄’ 이전에도 ‘공적 신뢰’에 의해 심판받는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헌정의 뿌리를 흔들었다는 의혹만으로도 지도자는 공동체 앞에 무거운 책임을 진다. 윤 전 대통령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적 실책이 아니다. 권력이 통제 장치를 무력화하고 절차를 무시하는 순간, 국가는 ‘법의 국가’에서 ‘사람의 국가’로 전락한다. 법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를 묶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권력자가 법을 비틀고 제도를 우회하며 국가 장치를 사병처럼 다뤘다면 그때부터 역사적 책임은 시작된다. 지도자의 일탈은 개인의 타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무원 사회를 왜곡하고 수사·사법 시스템의 신뢰를 갉아먹으며 결국 국민 사이의 공동 규칙을 파괴한다. “어차피 힘 있는 사람은 빠져나간다”는 냉소가 확산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붕괴한다. 이 사태가 남긴 상처는 개인의 명예나 진영의 승패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상식의 국가’라는 토대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한 산업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권력이 절차를 경시하고 물리력과 지시로 제도를 눌러버리는 순간 우리는 개발도상국적 권력 습성의 가장 낡은 어둠으로 되돌아간다. 그 후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합리화하는 순간 더 큰 재앙이 찾아온다. 역사는 늘 그렇게 경고해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재판은 재판대로 원칙주의에 따라 끝까지 가야 한다. 여론의 속도나 정치적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법률과 증거, 절차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헌정의 복원이다. 둘째,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사태를 진영 사건으로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편이면 괜찮고, 상대편이면 악”이라는 언어는 민주주의를 다시 찢는다. 법치를 지키는 일은 어느 편의 승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 조건이다. 윤석열을 ‘역사의 죄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특정 인물을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권력이 헌정 위에 서지 못하도록 못을 박기 위해서다.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하고, 절차를 존중해야 하며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자 내일의 안전장치다. 죄는 개인이 짓지만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묻고 반드시 기록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정의 판결이 어떤 결론에 이르든, 역사 앞에서의 책임은 이미 시작됐다.
2026-01-17 2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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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 ③】 공산당 국가지만,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다
[이코노믹데일리] 중국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공산주의’다. 많은 한국인에게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며 공산당이 이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나라로 인식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을 고전적 의미의 공산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중국은 분명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이지만 공산주의 이념을 국가 운영의 목표로 삼는 나라는 아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을 바라보는 거의 모든 판단이 엇나간다. 공산주의란 원래 생산 수단의 공유, 계급 없는 사회, 평등한 분배를 지향하는 이념이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 사회를 이 기준으로 바라보면 모순투성이다. 중국에는 거대한 빈부 격차가 존재하고 부동산과 자본이 축적된 상층 계층이 명확히 존재한다. 대도시의 자본가와 농촌 노동자의 삶은 극명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중국은 스스로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한다. 이 모순을 설명하는 열쇠는 이념이 아니라 ‘통치 방식’에 있다.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혁명 정당이 아니다. 오늘의 중국 공산당은 혁명과 계급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던 조직이 아니라 국가를 관리하는 통치 조직에 가깝다. 평등보다는 안정을, 이상보다는 통제를 중시한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체제를 정당화하는 언어일 뿐 정책 결정의 절대 기준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핵심 목표는 단순하다. 국가 통합과 체제 유지다. 이 목표에 도움이 된다면 시장경제도, 자본도, 심지어 불평등도 용인한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적 요소를 대거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산당은 이념의 순수성을 지키기보다 권력의 지속성을 선택했다. 이는 이념적 후퇴라기보다 통치 조직으로서의 진화에 가깝다. 이 점에서 중국은 북한이나 과거 소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여전히 이념 자체를 체제의 정당성으로 삼고 있으며 실패한 모델임에도 수정에 소극적이다. 반면 중국은 이념이 실패하면 과감히 수정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그 상징적 사례다. “흑묘백묘론”은 중국 공산당의 실용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양이가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를 고정된 이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정 가능한 틀로 해석한다. 중국식 사회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구적 기준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중국 내부 논리에서는 일관된 선택이다. 이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체제를 유지하는 데 유용한 만큼만 유지된다. 이러한 실용주의는 중국 정치 시스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은 느리고 복잡해 보이지만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이는 이념적 확신에서 나오는 추진력이 아니라 조직적 통제에서 비롯된 힘이다. 공산당은 국가와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조직이며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이념은 지침이 아니라 장식에 가깝다. 중국 사회에서 공산당의 역할은 단순한 집권 세력을 넘어선다. 공산당은 행정, 경제, 교육, 언론, 군을 관통하는 관리 조직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권력 교체의 도구라면 중국에서 공산당은 국가 그 자체에 가깝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정치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많은 한국인은 중국 공산당이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 공산당을 이념 정당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 곳곳에 인사 관리 시스템과 감시 체계를 구축해 왔다.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을 통해 일정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유지한다. 이는 민주적 합의는 아니지만 통치 기술로서 상당히 효과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시장을 통제하지 않지만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절대 놓지 않는다. 민영 기업이 성장할 수는 있지만 당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형 IT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기업 내부의 당 조직 설치는 이 같은 원칙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자본을 활용하지만 자본이 권력을 갖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법과 제도보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할 수 있다. 이는 외국 기업에게는 위험 요소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체제 안정의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 공산당은 예측 가능한 법치보다 통제 가능한 질서를 선택한다. 중국을 공산주의 국가로만 인식하면 우리는 중국의 변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게 된다. 중국이 갑자기 민주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이념 붕괴로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 중국은 이념의 실패로 무너질 나라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이념이 아니라 조직과 통치 기술로 유지되는 체제다.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 체제가 영원히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경제 성장 둔화, 사회 불평등, 세대 갈등은 분명한 도전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역시 이념의 균열이 아니라 통치 능력의 문제로 관리된다. 중국 공산당은 이상을 약속하기보다 질서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정당성을 유지하려 한다. 한국 사회가 중국을 이해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적 이념 투영이다. 중국을 ‘공산주의’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하는 순간, 분석은 멈춘다. 중국은 더 이상 교과서 속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동시에 서구식 자본주의 국가도 아니다. 중국은 공산당이 통치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국가다. 중국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중국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공산당 국가지만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중국은 훨씬 더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된다. 예측 가능한 대상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의 대상이다. 중국은 이념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계산으로 움직인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도 중국을 오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이해한다면 중국은 더 이상 신비롭지도, 이해 불가능한 존재도 아니다. 분석 가능한 현실의 국가가 된다. 중국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중국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판단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중국을 이념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사고를 포기하게 된다. 중국을 냉정하게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중국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2026-01-13 09: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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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강선우 의원은 스스로 물러나 법의 판단을 받아야
정치는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제도다. 그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정치는 공동체의 신뢰를 잃는다. 최근 불거진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자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그에 대한 검찰 내사, 그리고 김 의원을 둘러싼 수사 무마 의혹은 한국 정치가 아직도 가장 기본적인 윤리 기준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개인 비리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의혹이 제기된 이후의 태도다. 수사 대상이 되었음에도, 정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자진 탈당도, 직에서 물러날 의사도 보이지 않는 모습은 공직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정치가 법정 다툼의 기술로 전락할 때, 국민은 더 이상 정치인을 대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병기 의원 배우자는 전직 지방의회 인사로부터 제공 받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한 차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검찰은 별도로 입건 전 조사를 진행하며 계좌 추적과 소환 조율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 의원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에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시민단체 고발로 이어진 상황이다. 아직 사법적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의 기준은 판결문보다 앞선다. 공직자의 가족이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치명적이다. 더구나 그 의혹이 반복되고, 수사 무마 의혹까지 겹친다면 이는 단순한 ‘도덕성 논란’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 가능성이라는 중대한 경고 신호다. 이런 상황에서도 “법적 문제는 없다”는 말 뒤에 숨는 태도는 정치의 오만에 가깝다. 강선우 의원 역시 각종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별 사안의 결론이 아니라, 정치권이 스스로 정화할 능력이 있는가다.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버티기’로 일관하고, 사법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관행이 된다면 정치 윤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주주의 전체로 돌아간다. 정치사에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고대 공화정에서 공직자는 사적 이해관계가 공적 판단을 흐릴 가능성만 있어도 물러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근대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자신이나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국가 운영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직을 내려놓고 법의 판단을 받았다. 이는 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제도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반대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법 절차를 방패로 삼았던 정치인들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정치적 신뢰는 법적 무죄로 회복되지 않는다. 신뢰는 태도로 얻고, 결단으로 지켜진다. 김병기 의원과 강선우 의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결단이다. 공직에 머무르는 것은 권리가 아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며, 그 권한이 의혹으로 오염됐을 때는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책임 정치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말은 법정에서는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 그것은 공동체를 인질로 삼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수사 대상이 된 정치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채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사법 절차의 공정성마저 훼손할 수 있다. 이는 본인을 위해서도, 정당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리와 개혁을 말해온 정당이 내부 인사의 의혹 앞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한다면, 그동안의 모든 도덕적 언어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것이 아니라, 정당의 존재 이유를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지금 필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의혹을 받는 정치인은 스스로 물러나 법의 판단을 받으라.그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정치가 아직 부끄러움을 아는 영역임을 증명하는 길이다. 정치는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다. 책임을 감당하는 용기다. 김병기 의원과 강선우 의원이 진정으로 법 앞의 평등을 믿는다면, 그리고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한다면, 그 첫걸음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버티는 정치가 아니라, 물러나는 정치가 민주주의를 살린다.
2026-01-12 15: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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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5)
정치인들의 언행 불일치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 앞에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근엄한 표정을 짓지만, 정작 뒤로는 사익 앞에서 언제든 태도를 바꾸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정치권은 이중적 행태가 들통날 때마다 “국민께 송구하다”는 똑같은 문구를 반복하지만, 반성과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국민은 놀라기보다 지쳤고, 분노하기보다 냉소가 깊어졌다. 그렇게 ‘내로남불(內勞南不)’은 대한민국 정치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들이 가진 직무상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에 나섰다가 들킨 의원들, 자녀 교육을 명분으로 아무렇지 않게 위장전입을 단행한 인사들, 갭 투자로 시세 차익을 챙기면서 한편으로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법을 만든다며 목소리 높이던 정치인들까지. 이렇게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모습을 보고 국민이 어떻게 그들의 주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이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문제는 이런 위선적 행태가 단발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들킬 때마다 “개선하겠다”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지적을 받으면 오히려 큰소리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다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누적된 위선이 정치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치 불신은 이제 구조적 회의로 변했고, “정치인은 원래 그렇다”는 씁쓸한 말이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신뢰가 무너진 정치가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그 말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이 위기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인의 윤리 의식이 낮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낮은 윤리를 방치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 있다. 제도가 허술하니 도덕이 흔들리고, 도덕이 무너지니 신뢰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민의 정치 불신을 되돌리려면, 이 구조를 송두리째 뜯어고쳐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안해 본다. 먼저 이해충돌 방지 체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비공개 정보 기반 투자나 부동산 투기와 같은 행위를 사전에 원천 봉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국회의원 본인은 물론 가족 명의까지 포함한 전수 조사가 가능해야 한다. 공직자의 재산 변동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혹이 생기기 전에 미리 차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정치권 외부에서 감시·징계를 결정하는 상설 시민 감시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국회 윤리특위가 동료 감싸기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인 스스로가 징계를 판단하는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변호사·회계사·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독립기구가 공직자 윤리 위반에 대해 실질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다음은 위선적 언행에 대한 강제적 책임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위장전입·갭 투자·입시 특혜·정보 이용 투자 등 국민 분노를 일으키는 사안에 대해 일정 기준 이상 적발되면 자동으로 공직에서 배제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인은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직자 윤리 교육을 실효성 있게 개편해야 한다. 지금처럼 보여주기식 교육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실제 상황 기반 윤리 훈련, 이해충돌 회피 사례 연구, 정기적인 윤리 감수성 점검 등 실질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공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출결 현황, 법안 발의, 징계 이력, 이해충돌 회피 노력 등 의정활동의 모든 요소가 실시간으로 공개돼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평가에서 숨을 곳이 없어야 한다. 정치가 신뢰를 잃으면 국가의 기초가 흔들린다. 정치인은 국민이 띄우는 배이며, 국민은 언제든 그 배를 뒤집을 수 있다. 고사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전하는 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정치권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기만 할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공허한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그리고 그 실천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2025-11-28 11: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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