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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정책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일거리에서 자란다
이재명 대통령은 줄곧 일자리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 강조해 왔다. 고용은 민생이고 민생은 경제의 심장이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다. 일자리는 정책 구호로 생기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자리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출발점은 언제나 일거리다. 냉정하게 보자.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은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 내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규칙을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중요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새로운 수요를 발견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시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창업가와 기업인이다. 일자리는 사업에서 나온다. 사업은 일거리의 축적이다. 누군가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이 반응할 때 일거리는 확장되고 고용은 뒤따른다. 이 단순한 경제의 원리가 정치의 언어 속에서 자주 왜곡된다. 미국과 독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례다. 정부가 직접 고용을 늘리기보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주목해야 할 사례는 여기에만 있지 않다. 아시아의 변화는 훨씬 더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 최대의 일자리 창출 실험장을 운영해 왔다. 중국 정부는 모든 기업을 자유롭게 방치하지도 모든 고용을 직접 책임지지도 않았다. 대신 명확한 전략 산업을 설정하고 해당 분야에서 민간 기업이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수많은 중소기업과 민영기업이 제조업과 플랫폼, 유통과 서비스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농촌 인구는 도시로 이동하며 대규모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완벽한 모델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의 고용 증가는 ‘공공 일자리 확대’가 아니라 민간의 일거리 폭증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더 인상적이다. 베트남 정부는 일자리를 외치기보다 “기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먼저 물었다. 외국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행정 절차를 단순화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며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그 결과 글로벌 제조 기업과 국내 기업이 함께 성장했고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보다 공장과 기업 현장으로 향했다. 베트남의 일자리는 정부 청사에서 생기지 않았다. 공장과 물류 창고, 연구소와 서비스 현장에서 자라났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국가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대신 일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판을 깔았다. 규칙은 강했지만 방향은 분명했고 기업은 그 틀 안에서 속도를 냈다. 기업을 잠재적 범법자로만 보지 않았고 실패를 전면적으로 낙인찍지도 않았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일자리를 숫자로 관리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단기 고용 지표에 집착하고 공공 부문이 민간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려 한다. 그러나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세금이 마르면 사라진다. 반면 기업이 만든 일자리는 시장 경쟁 속에서 스스로 생존하며 확장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몇 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일거리가 생겨나고 있는가”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창업가와 기업인이 지금 이 나라에서 마음 놓고 뛰고 있는가.” 정도 언론의 시선으로 분명히 말한다. 공정과 정의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그 가치가 도전을 억누르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예측 가능해야 하고, 정책은 일관돼야 한다. 기업이 5년,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할 수 없는 나라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일자리는 대통령의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거리를 만드는 사람들, 즉 창업가와 기업인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미국과 독일이 보여 준 교훈은 하나다. 국가는 앞에서 끌어주기보다 뒤에서 밀어 주고 옆에서 지켜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이재명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를 말하는 언론이 외면해서는 안 될 기본이자 상식이다.
2025-12-31 15: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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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4)
‘막말 정치’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피로를 증폭시키는 암적 존재다. 최근 정계에서 벌어지는 저급한 단어 선택과 감정적 비난, 여야 간 무의미한 정쟁은, 마치 시장 잡배들끼리 벌이는 싸움처럼 느껴질 정도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는 정책 논의 대신 욕지거리 배틀이 열리고 공당의 대변인들조차 정제되지 못한 언어로 당의 공식 입장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정치인에 대한 존경은 커녕 깊은 혐오감마저 느끼게 된다. 예컨대, 어느 의원이 청문회 자리에서 “살인자”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한 것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선 폭언이며, 이는 정치의 품격을 땅에 내동댕이치는 행위다. 이런 막말이 반복되면 국민은 더 이상 정치인의 말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정치가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욕설의 장이 된다면 그것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의 집단이 정치판에 난무하는 꼴이다. 더욱이 공당의 공식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대변인들이 수준 이하의 표현을 남발한다는 것은 당 자체의 품격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다. 이는 마치 “가렴주구(苛斂誅求, 백성들에게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고 재물을 빼앗는 상황)”처럼,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민심을 도리어 해치고 정치를 향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대로 좌시할 수만은 없다. 정치의 언어를 세련되게 다듬고 막말에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를 세워야 한다. 예로 아래 4가지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첫째, 국회 윤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해 막말 행위에 대해 명확한 제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도 책임이 따르도록 윤리 벌금, 공개 사과, 심각한 경우 사기 징계를 포함한 징계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정치인 언어 교육과 코칭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천을 받은 후보자뿐 아니라 현직 의원도 정기적으로 소통·토론 역량을 강화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셋째,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의 토론 구조를 개혁하여 정쟁보다는 정책 중심의 논의를 장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속어 사용 금지 조항’을 규정하거나 언어 품질 평가에 따른 토론 우선권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넷째, 정당 내부의 대변인 임명 절차를 투명히 하고 대변인 선발 시 언어력·소통력도 평가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개혁을 통해 우리는 정치 언어의 품격을 되찾고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말은 단지 표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도구다. 정치인들이 말 한마디에 신성함을 담고 자숙과 성찰의 태도로 언어를 다룰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 막말이 아닌 품위 있는 언어가 국회와 여야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정치의 사다리가 무너진 지금, 말의 격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5-11-23 13:4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