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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김 의장은 자본이 보내는 신호를 심각하게 생각하라
김범석 쿠팡 의장은 국회의 경고 앞에서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여야가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라도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제도적 제재 방안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데도 그의 태도는 무심하다. 침묵은 전략일 수 있으나 반복될수록 오만으로 읽힌다. 민주 사회에서 국회는 협상의 상대가 아니라 국민을 대신한 질문자다. 그 질문을 무시하는 순간 기업은 스스로를 법과 상식 위에 놓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한국 사회의 소비자와 노동, 공공 인프라 위에서 성장한 기업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가 민주적 통제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의장은 ‘글로벌 기업가’라는 말로 국회 출석 요구를 비켜가고, 외국인 대표를 전면에 세웠다. 형식적으로는 법을 어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형식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책임의 얼굴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적 상식이다. 고전은 이 문제를 이미 꿰뚫고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명(正名)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어그러지고 말이 어그러지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의 이름을 피하는 사회에서 공정한 질서가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김 의장의 태도는 바로 이 정명을 무너뜨리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 압박은 김 의장에게 크게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법과 제도는 시간이 걸리고 여론의 파고는 기업이 관리 가능한 변수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본의 신뢰다. 시장은 정치적 발언보다 자금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다. 특히 국민연금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국민의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공적 기금이자, 시장에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상징적 투자자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은 단지 수익성만이 아니라 지배구조, 책임성, 사회적 신뢰를 함께 평가받는다. 이는 압박이 아니라 원칙이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인권 침해, 환경 파괴, 지배구조 문제를 이유로 글로벌 대기업들의 투자 비중을 축소하거나 철회해 왔다. 그 결정은 정치적 제재가 아니라 장기 리스크 관리라는 명분 아래 이뤄졌다. 그 결과 해당 기업들은 이미지 타격을 넘어 다른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도 동일한 질문을 받게 됐다. “이 기업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연기금과 공적 펀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고경영진의 책임 회피, 의회 불응,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장기 투자 관점에서 ‘위험 요인’으로 분류된다. 글로벌 자본은 도덕을 말하지 않지만 신뢰를 가격에 반영한다. 김 의장이 가장 두려워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국민연금이 공개적으로 투자 지속 여부를 재검토하는 국면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이는 단일 기관의 판단을 넘어선 신호가 된다. “이 기업의 리스크는 관리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자본은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불안은 전염된다. 맹자는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고 했다. 공정한 규칙과 신뢰라는 ‘항산’이 무너지면 시장의 안정적 판단이라는 ‘항심’도 사라진다. 국민연금의 투자 회수 가능성은 처벌이 아니라 경고다. 신뢰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특정 기업을 겨냥한 보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반대다. 공적 자금은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에 대해 질문할 의무가 있다. 투자 철회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그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직무 유기다. 이제 선택은 김범석 의장에게 있다.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국회와 사회를 관리 대상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공개된 자리에서 책임 있는 설명으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전자는 단기적으로는 편할 수 있으나 자본의 기억은 길다. 후자는 불편하지만 지속 가능한 길이다. 『사기』에서 사마천은 “큰 장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성장을 이룬 기업의 수장이 그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 성장은 언젠가 비용으로 돌아온다. 국민연금의 선택은 그 비용을 미리 경고하는 장치일 뿐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신뢰를 잃은 기업에는 침묵보다 더 무서운 방식으로 답한다. 김범석 의장이 지금 귀 기울여야 할 것은 국회의 법안 문구가 아니라 자본이 보내는 이 조용한 신호다.
2025-12-2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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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이후의 경쟁력…한국 대기업, 전략 무대가 바뀐다
※ '강철부대'는 철강·조선·해운·방산 같은 묵직한 산업 이슈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붉게 달아오른 용광로, 파도를 가르는 조선소, 금속보다 뜨거운 사람들의 땀방울까지. 산업 한복판에서 만나는 이슈를 '강철부대원'처럼 직접 뛰어다니며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주말, 강철부대와 함께 대한민국 산업의 힘을 느껴보세요! <편집자주> [이코노믹데일리] 한국 대기업들은 더 이상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사업을 키우기 전에 리스크가 폭발하지 않도록 구조를 먼저 설계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공장 증설과 설비 투자가 성장의 상징이던 시기를 지나 이제 경쟁력의 무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연료전지 제조 자회사 청산, 한화그룹은 에너지 계열 지분 구조 재편 등에 나섰다. 이들 대미 수출기업들의 통관 리스크 대응 강화는 각기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제조와 외형 확장을 중심에 둔 전략에서 벗어나 비용과 리스크가 통제 가능한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방향으로 기업 전략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고정비와 물리적 구조 리스크 연료전지·발전설비·신재생 제조 사업은 표면적으로는 미래 산업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구조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CAPEX)에 프로젝트 단위 수주 구조가 결합돼 규모를 키워도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기 어렵다. 설치 이후에는 장기간 유지·보수와 성능 보증 책임이 뒤따르고 규제 환경 변화에 따라 비용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크다. '만들수록 좋아지는 사업'이 아니라 '만들수록 고정비가 쌓이는 사업'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최근 대기업 전략의 핵심은 제조 자체가 아니라 제조가 불러오는 구조적 부담을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느냐다. 일부 기업이 제조 사업에서 한 발 물러났다고 해서 해당 산업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직접 키울 영역과 외부에서 조달할 영역을 구분하며 그룹 전략과 맞지 않는 고정비 구조를 사전에 차단하는 선택에 가깝다. 통관·증빙이 가르는 제도적 구조 리스크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232조 관세, 우회덤핑 규제가 상시화되면서 대미 수출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관세율이 아니라 통관 단계의 설계로 옮겨갔다. 품목 분류 방식, 철강·알루미늄 함량 가치 산정 기준, 증빙 체계 관리 수준에 따라 실제 부담 비용이 크게 달라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회계·법무·통관·지배구조가 비용으로 인식됐다면 지금은 이 영역들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구조 설계에 따라 이익이 남을 수도, 리스크로 돌아올 수도 있는 환경이다. 생산 능력보다 내부 통제와 설계 역량이 먼저 평가받는 시대가 된 셈이다. 자본과 지배가 만드는 전략적 구조 리스크 구조부터 손보는 전략은 제조와 수출 현장뿐 아니라 자본과 지배 구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화그룹이 에너지 사업 방향을 논하기에 앞서 자본과 지배 구조를 먼저 정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최근 한화그룹 오너 3세가 한화에너지 지분 일부를 재무적 투자자(FI)에 매각하며 지분 구조를 재편한 결정은 사업 확대나 축소를 곧바로 판단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향후 전략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사전 정비에 가깝다. 그동안 한화에너지는 오너 일가 개인 자본이면서 동시에 그룹 지배 구조와 맞물려 있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번 거래를 통해 그룹 전략을 위한 자본과 오너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자본의 역할이 보다 명확히 분리됐다. 특히 그룹 핵심 비상장 계열사에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는 당장의 상장이나 사업 방향을 예고하기보다 향후 에너지 사업을 키우거나 조정할 경우 외부 자본의 검증과 시장 기준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두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사업을 먼저 키운 뒤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 리스크를 먼저 정리한 뒤 사업 선택지를 열어두는 전략이 전면에 올라온 것이다. '확대' 아닌 '확률' 택한 경영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대기업 전략이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확률과 회수 가능성을 우선하는 '냉정한 경영'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비용과 리스크가 폭발하지 않도록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는 의미다. 공장을 짓지 않는 선택은 위축이 아니다. 규제와 비용, 자본과 리스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경쟁의 무대가 바뀌었음을 읽어냈다. 더 많이 만드는 쪽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않고 어떤 구조를 남길지를 설계하는 쪽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 생산량이 아니라 구조의 완성도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국면이다. 강철부대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국 대기업들은 더 이상 공장 앞에 서 있지 않다. 생산량을 늘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관세와 자본, 지배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승부하는 기업만이 다음 판에 남고 있다.
2025-12-2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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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화 문턱에 선 현대차 SDV 전략...'포티투닷' 차기 리더십 과제는
[이코노믹데일리] 현대자동차그룹의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전략을 총괄해온 AVP본부장과 포티투닷(42dot) 대표직이 동시에 공석인 상황 속 차기 후임 인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SDV가 기술 개발 단계를 넘어 양산 적용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플랫폼 조직과 완성차 양산 체계 간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재정비할지가 인선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차기 리더십은 SDV 조직의 양산 영향력을 키우는 조직 개편과 레벨2+ 중심 SDV 전략의 글로벌 양산 안착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만큼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는 평가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전날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연구개발(R&D) 리더십을 재편하며 소프트웨어 중심 전환 기조를 재확인했다. 다만 SDV 전략의 실행 축이었던 AVP본부장과 포티투닷 대표직 후임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달 초 송창현 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사퇴하면서 SDV 조직은 리더십 공백을 맞게 됐다. SDV 전략이 연구개발 중심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양산과 책임을 수반하는 국면으로 넘어가는 시점과 맞물린 변화다. 그룹 차원에서 SDV 기술 개발 로드맵은 유지되고 있지만 기술 성과를 양산 체계에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구조 정비가 선행 과제로 부각되면서 인선 역시 신중하게 진행되는 흐름이다. SDV 상용화 단계에서 드러난 가장 큰 제약은 AVP본부와 포티투닷이 기술 개발을 주도했음에도, 양산 단계에서는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두 조직은 SDV 아키텍처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차량용 운영체제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해왔지만, 실제 차량 적용 여부와 시점은 차종 개발·제조·품질 조직의 판단을 거쳤다. 완성차 개발 체계가 안전 규제와 품질 책임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구조인 만큼 플랫폼 조직이 제시한 로드맵은 양산 단계에서 적용 범위와 시점이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포티투닷이 소프트웨어 기업 방식으로 개발 속도와 기술 축적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양산 단계에서는 설계 변경, 시험·검증, 서비스 대응, 리콜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완성차 책임 구조가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웠고, 기술 개발 주도권과 양산 확산 책임 간 간극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SDV 전략이 레벨2+에 머무르는 이유도 이와 직결된다. 자율주행 단계가 레벨3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사고 발생 시 제조사의 법적 책임이 확대되는 만큼, 글로벌 판매 비중이 높은 완성차 기업으로서는 국가별 규제 차이와 법적 책임 구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레벨2+는 기능 고도화가 가능하면서도 기본적인 법적 책임이 운전자에게 남는 구조로, 글로벌 시장에 동일 기준으로 적용하기 용이하다. 이 때문에 SDV 적용 전략은 레벨2+ 중심으로 설계되고 기능 확장 역시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율주행과 OTA(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이러한 전략적 제약을 보여준다. OTA를 통해 기능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지만, 결함 발생 시 책임과 리콜 리스크가 즉각적으로 발생한다. 레벨3 이상 자율주행의 전면 확대는 기술 완성도 외에도 법·규제·책임 체계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며,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SDV 전략의 적용 속도가 기술 진척 속도와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차기 AVP본부장과 포티투닷 대표직은 이러한 전환 조건을 전제로 SDV 전략을 재정렬해야 한다. 플랫폼 조직이 어떤 차종과 시장에 SDV 기능을 적용할지, 적용 시점과 검증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사고와 결함 발생 시 책임과 대응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지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 기술 개발 관리보다 양산 적용과 조정·운영의 비중이 커진 배경이다. 현대차그룹이 SDV를 통해 지향하는 목표는 개별 기능의 구현이 아니라,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반복 적용 가능한 소프트웨어 기반 양산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 이번 인사에서 포르쉐 출신 만프레드 하러가 연구개발(R&D) 수장으로 선임된 점은 연구개발 조직의 초점을 기술 선도보다 양산 완성도와 책임 관리에 두는 방향으로 재정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DV가 상용화 국면에 진입한 시점에서 기능 확대 속도보다 양산 적용과 책임 관리에 방점을 찍겠다는 인사 설계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AVP본부 송창현 전 사장의 후임을 빠른 시일 내 선임할 계획”이라며 “그의 주도로 구축해 온 SDV 개발 전략 수립과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의 기술 내재화를 바탕으로 SDV 핵심기술의 양산 전개를 위해 차세대 개발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5-12-19 16: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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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김범석의 침묵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다
기업의 크기가 사회적 영향력을 결정하는 시대, 그 영향력에 비례하는 ‘책임의 무게’는 경영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쿠팡의 실질적 지배주주인 김범석 의장은 이 자명한 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를 비롯한 공적 질의의 장에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단순한 ‘출석 불응’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적 통제 시스템과 시민사회를 향한 의도적인 무시이자,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수천만 소비자와 수십만 노동자에 대한 기만이다. 김 의장은 국적과 ‘글로벌 경영자’라는 직함을 방패 삼아 책임의 자리를 비워두었다. 그가 머무는 ‘글로벌’이라는 영역은 혁신의 공간이 아니라 한국 법과 사회적 비판이 닿지 않는 성역(聖域)이 되어버렸다. 권한은 무소불위로 휘두르되 책임은 외국인 대표자나 실무진에게 떠넘기는 이른바 ‘책임의 외주화’는 이제 쿠팡의 경영 전략처럼 굳어지는 양상이다. 미국식 스탠더드는 왜 '청문회' 앞에서만 멈추는가 김 의장과 쿠팡이 그토록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모델로 삼는 미국의 아마존, 메타, 구글의 CEO들은 어떠했는가.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순다르 피차이는 매번 의회의 호출을 받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질문과 날 선 비판 앞에 섰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해서가 아니다. 거대 기업이 사회 구조를 바꿀 만큼 강력해졌다면 그에 상응하는 공적 설명을 내놓는 것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맺은 최소한의 사회적 계약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의장은 한국에서 얻은 막대한 이익과 성장은 ‘글로벌 기업’의 성과로 포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과로사 논란, 블랙리스트 의혹, 불공정 거래 행위 등에 대해서는 ‘전문 경영인’ 뒤로 숨어버린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글로벌 오만’이다. 미국 의회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만함이 한국 국회에서는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묻는 기업가의 '의(義)'와 '본(本)' 공자는 “군자는 의(義)를 밝히고 소인은 이(利)를 밝힌다”고 했다. 오늘날 김 의장의 선택은 철저히 이익의 계산기 위에 놓여 있다. 국회 출석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과 발언의 법적 리스크를 저울질한 끝에 그는 ‘도피’라는 가장 비겁한 효율을 택했다. 하지만 기업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는 순간 그 어떤 재무제표의 숫자도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맹자의 민본주의(民本主義) 관점에서 볼 때도 그의 행태는 반(反)시대적이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가르침은 현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의 토대는 소비자(백성)와 공동체(사직)다. 경영자는 그 토대 위에서 잠시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김 의장은 스스로를 공동체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설정한 듯하다. 국회와 국민을 아래에 두고 자신의 ‘글로벌 일정’을 이해해달라 강요하는 태도는 민주적 질서를 거꾸로 세우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한국은 시장인가 아니면 책임 회피의 실험장인가 연속되는 김 의장의 행보를 보며 대중은 묻는다. 그는 진심으로 한국을 동반 성장의 파트너로 보는가 아니면 법망의 허점을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로 보는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에서는 비켜나 있는 현재의 구조는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드는 정교한 설계처럼 보인다. 이런 행태가 용인된다면 이는 향후 모든 글로벌 기업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게 된다. “한국에서는 돈만 벌고 책임은 회피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고착되는 순간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무너지고 시장 질서는 왜곡될 것이다. 이제는 국회와 사회가 답해야 한다. ‘유감’ 표명이라는 공허한 메아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책임을 묻고 불응에 대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 혁신가와 회피자의 갈림길 김범석 의장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책임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회피자’로 남을 것인가. 진정한 리더십은 화려한 보도자료나 나스닥 상장 종목명에 있지 않다. 자신을 키워준 사회의 정당한 물음에 직접 답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성공의 열매는 독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책임은 결코 혼자 피할 수 없다. 김 의장이 지금처럼 침묵을 방패 삼아 숨어 지낸다면 쿠팡이 쌓아 올린 ‘로켓 성장’의 탑은 언젠가 ‘신뢰의 결핍’이라는 기초 부실로 인해 흔들리게 될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그의 ‘글로벌’ 핑계를 믿지 않는다. 이제 그가 직접 광장으로 나와 책임의 언어로 답할 차례다.
2025-12-19 11: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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